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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 비는 동면국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긍정 속의 부정을 주장하면서 무언가 기대와 의욕을 갖고 지난해 2월 선거에 참여했었다. 비록 지난 1년간 노력이 미흡했다 해도 앞날은 더욱 태산준령이 가로놓인 것 같다.』유진산 총재가 8대 국회 1년을 돌아보며 한 얘기다.
국회는 지난해 12월19일 문을 닫은 이래 긴 겨울잠을 깨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필요할 때만 개회>
야당은 줄곧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해 왔지만 일방의 주장에 머무르고 말아 이민우 신민당총무 같은 이는『국회란 정부-여당이 필요할 때 여는 것』이라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최근 서해사건을 계기로 여당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
서해안에서의 북괴도발행위를 계기로 안보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국회활동을 풀어 가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줄기차게 임시국회를 열자고 요구해온 야당과 이를 외면해온 여당이「안보」라는 초당적 공통분모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는 7일부터 4일간 여야 당직자 시찰단을 구성해서 군수산업 및 안보실태를 돌아보기로 한 것이라든지, 지금까지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던 상임위활동을 여당 측이 굳이 막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러한 징조의 예.
그래서 4일 외무위를 열고 내주 중에 다시 상공 위를 소집하기로 여야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팽팽히 맞섰던 여-야 견해>
국회소집을 둘러싼 줄다리기에서 보인 여-야의 입장은 크게 어긋나 있었다.
두 차례 대통령 긴급조치, 최근 정부가 단행한 일련의 물가인상조정, 서해사건에서 비롯된 남북간 긴장, 그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종래의 관례에 따른다면 임시 국회소집이유가 된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여당의 당면과제는 l·8 긴급조치를 선도하게 된 정치 내지는 사회여건을 극복하는 일이다. 국회를 열면 야당의 대 정부질문이 과격해질 것이고, 이것은 회복돼 가는 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여당의 견해.
야당의 끈질긴 임시국회 소집요구에 대해 여당간부들은 이런 이유를 내세워 5월까지는 거론하지 말자고 했다.
국회 소집이 막힌 가운데 신민당의 활동은 정체상태에 빠졌다.
주요국정이 줄달아 일어나도 국회가 방관자 역에 그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야당의 무위 내지 사실상의 부재와 연결된다는 것이 한 야당간부의 말이다.

<"차라리 야당의 문을…">
그래서 고흥문 부총재 같은 이는『이런 긴박하고 중요한 때도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차라리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야당의 문을 닫겠다』고 까지 했다는 얘기다.
신민당소속 의원들이 당선 1년을 반성하면서『답답하다』라고 말했지만 답답한 것은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의원들도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임위를 열도록 하겠다는 여당의 방침은 의원들의 이런 무력감을 달래주는 뜻도 있고, 누적되어 갈지도 모를 야당의 불만을 어느 정도 까지는 발산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한데서이다.
그러나 국회해빙의 한계는 상임위활동까지일 뿐 가까운 시일 안에 임시국회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는 아직 없다.
임시국회의 소집은 오는 5월께나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여당간부의 말이다.
길전식 공화당 사무총장은『가뜩이나 민감한 요소가 많은 이 때 국회를 열면 야당의 발언이 자극을 줄지도 모른다. 이런 때는 국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며, 오는 5월쯤에 나 국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의 당초방침은 빨라야 6월에 가서 임시국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당 안에서도 국회를 닫아두는 것보다는 국회활동의 숨구멍을 얼마간 트는 것이 회복돼 가는 안정을 굳히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정치가 얼마간 기능을 되살리고 그 속에서 세론을 중화하는 등 국회가 배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견해다.
야당은 이런 여당의 입장에 부합되는 국회소집을 다시 교섭하고 있다.
당직자들의 군수산업 시찰단 구성문제를 협의하면서 신도환 신민당 사무총장이 김용태 공화당 총무에게 대통령의 소집요구 형식으로 단기간의 임시국회라도 열자고 제의한 것이 그것.
대통령이 국회를 소집할 경우는 기간과 의제를 정할 수 있다.
신 총장의 얘기는 대통령이 안보문제에 한정하든지, 또는 안보에다 최근의 경제문제까지 포함시켜 3, 4일간의 단기국회라도 열자는 것. 여당 쪽에선 대통령의 국회소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야의 정치공세 중화 노려>
여야 안보시찰단은 여당 측으로 보면 야당을 안보관심권 속으로 유도해서 시국과 관련된 다른 정치적 공세를 중화시키려는 계산에서 구상되었으리라는 얘기지만 야당의 입장에선 안보문제를 걸고라도 국회기능을 살려보고자 하는 계산에서 응한 것 같다.
그 만큼 아직은 그런 입장의 차가 좁혀지지는 않았지만 안보시찰이 여야관계를 풀어 가는 계기는 될 것 같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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