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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근로자의 생계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 가구의 생계비 지출 가운데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흔히 엥겔계수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것은 소득이 많은 가구일수록 그 수치가 적어지고 가난한 소득계층일수록 커지는 경향을 보여 준다. 소득이 많은 가구일수록 음식 비 이외의 다른 여러 가지 비목에 더욱 많은 지출의 여유가 있는 것이고, 가난한 가구일수록 생존을 위한 일차적 지출이라 할 수 있는 음식 비에 소득의 더욱 큰 몫을 지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나라와 같이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는「엥겔」계수가 높은 것이 보통이다. 아니,「엥겔」계수가 높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낮고 가난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지로 우리의 경우 도시노동자의「엥겔」계수는 지난해 4·4분기에는 44·2%이었으며 생계비의 약 3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선진국의 경우와는 아예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그 만큼 우리의 소득수준은 생존 적인 것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같은 우리 나라의「엥겔」계수가 최근에 와선 저하하기는커녕 도리어 증대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 72년 4·4분기에 40·2%이었던 것이 지난해 4·4분기에는 전기한 바와 같이 44·2%로 높아졌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엥겔」계수의 상승경향은 작년의 급격한 물가등귀 때문에 올해 들어서는 더욱 지속될 것으로 우려되는 것이지만, 하여간 이와 같은 경향은 도시근로자 가구의 생활수준이 날로 저하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단정하여 무방할 것이다. 이는 적어도 경제기획원에 의한 도시가계 동향 조사를 근거로 하는 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근로자의 생활수준이 저하하고 있다는 논거는「엥겔계수의 증대 면에서뿐만 아니라 저축률의 저하경향 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72년 4·4분기의 저축률은 9·7%이었던 것이 그 1년 후에는 9·1%로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물가급등 때문에 가계비 지출부담이 크게 증대하리라고 예상되는 최근에 와서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기획원의 도시가계비 동향조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구소득은 명목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다같이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중 명목적인 소득증가율은 8·9%이었고 실질증가율은 4·0%로 발표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획원의 조사는 실질소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생활수준은 떨어지고 있고 저축률은 저하하고 있다는 일견 모순된 현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기한 기획원의 조사가 이로부터 추산할 수 있는 동기간의 물가 상승률을 불과 4·7%로 보고 실질소득의 증가율을 과대평가 하였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8·9%이상으로 본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고 실질 생활수준의 저하경향은 바로 다름 아닌 실질소득의 저하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야 어쨌든 지난 한해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4·7%로 보는 기획원의 조사는 그것만으로도 실감적인 것이 못되며 통계작성 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한해동안의 실질소득이 설령 증대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활수준의 실질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미흡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주로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계비가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급여가 이에 따라 오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급여액이 다소 올랐다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이 급격한 탓이다. 이것은 생산성의 향상 율만큼 실질 임금 율을 올려주어야 한다는 통념적인 임금정책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정책당국은 이와 같은 조사자료를 참고로 하여서라도 임금정책을 다시 한번 검토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물가급등기일수록 임금정책은 더욱 확고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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