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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농기구 10점, 하루 10명 찾는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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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나주배 박물관 2층 전시실에는 농기구 등 10여 점의 유물이 있다. 이 박물관은 유물 빈약, 전문인력 부재 등으로 최근 등록을 취소당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21일 오전 전남 나주시 금천면 석전리의 ‘나주배 박물관’. 2층에 6~7㎡ 규모로 마련된 전시장에는 낫·호미·지게 등 농기구와 똥장군·저울·수레 등 10여 점이 놓여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문화관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소형 초가집 미니어처와 배·배꽃 사진 5점, 배를 소재로 한 시·시조 5점만이 벽에 걸려 있었다. 관람객 김찬종(47·사진작가)씨는 “볼거리가 너무 없어 박물관이라는 명칭이 부끄럽다”며 “관람객이 거의 없는데도 이를 운영하는 것은 세금 낭비 아니냐”고 말했다.

 이 박물관은 나주군이 6억원을 들여 지은 국내 유일의 배 테마 박물관. 나주에서 생산하는 배의 우수한 품질을 알리고 배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공간과 쉼터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1992년에 만들었다. 전체 부지는 3800㎡이며 건물은 2층, 연건평 1180㎡다. 1층에 사무실·영상관·자료실 등이 있고, 2층 전시관은 이해 공간(2개)·체험 공간·환영 공간·감동 공간·만남 공간으로 꾸몄다. 하지만 배의 종류· 생태 등에 대한 설명과 모형 배, 관련 고문헌 5~6권, 농기구 등이 전부인 전시관을 둘러보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1층 영상실의 경우 50여 개의 좌석을 갖췄지만 시설이 낡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난 6개월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직원은 털어놓았다. 이처럼 빈약한 전시물 때문에 지난해 전체 관람객은 3000여 명에 불과하다. 평일이면 관람객이 단 한 명도 없는 날이 적지 않다.

 이 박물관은 최근 등록을 취소당했다. 전시물품 부족, 인력 미비 등으로 개관 22년 만에 전남에서는 처음으로 등록을 취소당한 것이다. 김동집 나주시 농식품산업과장은 “배 관련 유물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원예협동조합 등과 손잡고 나주산 명품 배를 알리는 전시홍보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전남도에 따르면 시·군이 운영하는 공립박물관은 30곳이나 된다. 이 가운데 15곳(목포 자연사박물관·생활도자박물관·문학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순천 뿌리나무박물관, 여수 민속전시관, 나주 천연염색박물관, 강진 청자박물관·시문학파박물관, 해남 공룡박물관, 영암 도기박물관·농업박물관, 담양 대나무박물관, 보성 차박물관, 완도 산림박물관)만 박물관으로 등록돼 있다. 나머지 15곳은 미등록 상태라 ‘무늬만 박물관’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감사원의 조사결과 이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연평균 6000여 명에 그친다. 2010년부터 3년간 쌓인 적자만 488억원에 이른다.

 박물관으로 등록을 받으려면 학예사가 최소 한 명 근무해야 한다. 관련 유물을 1종 박물관은 100점, 2종은 60점을 보유하고 전시공간·수장고 등을 갖춰야 한다. 나주 배 박물관의 경우 직원은 두 명(6급 공무원·청원경찰), 유물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김충경 전남도 문화예술계장은 “유물·자료 등 콘텐트를 풍부하게 개발하고, 온 가족이 즐기는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해 관광객들이 제발로 찾는 박물관이 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며 “기준에 못 미치는 박물관은 앞으로 과감하게 정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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