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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아베, 안중근 기념관에 가보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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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안중근은 대한국인이다. 그의 유묵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한국인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인이었다. 동양을 떠나 인류의 대의, 즉 평화와 자유를 죽음으로 실천하고 간 대인(大人) 말이다. 21일 중국 하얼빈역 구내에 위치한 ‘안중근 기념관’에서 느낀 기자의 소회다. 아니다 거기서 만난 모든 중국인 남녀노소, 심지어 일부 외국인까지 같은 생각이다.

 예외가 있다면 역사를 직시하지도, 반성할 줄도 모르는 아베 정부일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20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호칭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라는 뜻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 영어사전에 이 단어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특히 살인과 폭탄을 사용하는 사람(A terrorist is a person who uses violence, especially murder and bombing, in order to achieve political aims)’이라고 정의돼 있다.

 스가의 논리대로라면 안 의사가 사사로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답이 바로 이 전시관에 있다. 이곳에 전시된 110여 점의 자료는 분명한 팩트로 안 의사 거사의 목적을 웅변하고 있다. 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침략전쟁에 대한 저격이고 인류 평화를 갈구하는 한 젊은 장군의 의기였다는 걸 말이다.

 중국 측도 안 의사 사진 아래 ‘동양평화의 창의자’라는 글을 내걸고 ‘저격’이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단적인 예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 전 안 의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동양평화론 집필을 마치고 싶으니 사형 집행 날짜를 연기해 달라고 요구한 자료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거부하고 사형 집행을 강행하는 야만성을 드러냈다.

 자료실에는 안 의사의 평화사상에 매료돼 그의 유묵 한 점을 받으려는 일본 관원들이 속출했다는 자료도 있다. 이는 일본 스스로도 안 의사의 거사 목적에 사사로운 정치적 목적이 없었음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시대, 어느 곳의 테러리스트가 사형 직전 인류 평화를 위한 집필을 이처럼 갈구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베와 그의 각료들은 안중근 기념관에 꼭 한번 가보시라. 가서 객관적 자료를 보고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든, 의사라 부르든 마음대로 하시라. 그것이 의를 위해 할복한다는 일본의 전통문화, 사무라이 정신이 아니던가. <하얼빈에서>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