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반도체 2등, 글쎄 그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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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뒷면을 뜯어보면 초록색 기판 위에 18개의 크고 작은 검은색 반도체가 꽂혀 있다. 이 중 사진이나 전화번호 등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능을 가진 메모리 반도체는 단 3개에 불과하다.

 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나 애플의 아이폰 등 어느 회사 제품이든 엇비슷하다.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해 전원관리칩, 위치를 알려주는 GPS칩, 터치스크린 통제칩 등 스마트폰의 핵심 기능을 책임지는 15개의 반도체는 모두 시스템 반도체다.

 이들 15개의 반도체는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삼성전자의 최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4에 들어가는 모바일 AP는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 800’이다. 다른 시스템 반도체 역시 대부분 외국산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국내 이통사의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드(LTE-A) 서비스를 지원하는 통신칩을 유일하게 퀄컴이 만들어 이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며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술은 솔직히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1일자로 ‘한국의 반도체가 일본을 제치고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반도체 생산액이 500억6700만 달러로 시장점유율 15.8%를 기록해 일본(13.9%)을 앞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 2위인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메모리 부문만을 ‘편식’해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두 개 회사는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을 절반 이상(52.7%) 점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한국과 피 말리는 경쟁을 펼치다 낙오한 일본·대만 메모리업체들이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이 늘어난 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메모리 시장보다 네 배 이상 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국내 업체들의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고작 5%에 불과하다.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개발을 전문으로 해온 국내 팹리스업체들이 기술(미국)과 가격(대만 등) 경쟁에 치여 업종을 바꾸거나 도태된 탓이다.

 그나마 삼성전자만이 시스템 반도체에 매달려 이미지센서 부문 세계 1위, 모바일 AP 국산화 등 ‘작은 성과’를 거뒀지만 전체적으로는 유럽·대만보다도 뒤처져 있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스마트폰용 핵심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답답한 상황이 바뀔 기미가 안 보인다.

 경쟁력이 없는 건 모바일뿐이 아니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만 해도 ▶프리스케일(미국) ▶인피니언(독일) ▶르네사스(일본)가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게다가 2016년이 되면 메모리 반도체 부분은 32% 성장하는 데 그치는 반면 시스템 부문 시장은 48%나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 등 후방산업도 취약하다. 삼성전자조차 여전히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기를 비롯해 핵심 장비들을 일본·독일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 웨이퍼와 감광재 등 반도체 소재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KAIST 이용훈(전자공학)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공정이 본격 도입되면 외국산 장비와 소재 의존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남은수 부품소재연구소장은 “우리나라처럼 시스템 분야가 취약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의료·자동차용 반도체 같은 차세대 주력 시스템 분야를 하루빨리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심각한 메모리 반도체 편중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부 김정일 전자부품과장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산업 재도약 전략’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시스템 반도체 개발과 핵심 장비·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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