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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 명의 재수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교 평준화의 조류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미 중·고등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간 한 편에서, 고교·대학의 문턱에서 턱걸이하다가 떨어진 이른바 재수생의 수는 해마다 늘어만 가고 있다.
올해의 입학시험 「시즌」도 이제 끝이 난 지금 이와 같은 재수생의 수효는 전국적으로 대충 2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교입시를 위한 재수생이 14만 명, 그리고 대학입시를 위한 재수생이 약 8만 명이라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재수생의 수는 해마다 약 2만 명씩의 비율로 계속 불어나고 있다. 그에 비해서 매년 재수생의 합격률은 오히려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뿐더러 재수생의 학교 지망상황을 보면 그 중의 19%만이 한번. 실패한 세칭 일류학교를 재차 지망하고 나머지 81%는 중류이하의 학교를 지망하고 있어 당초의 재수목적은 대부분 좌절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재수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원인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대학 졸업생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다』는 통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고,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만을 이수하고 나오는 젊은이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직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거기다가 고등학교·대학교의 정원 증가를 훨씬 웃도는 진학 희망자의 교육수요를 소화할 교육시설·교육투자가 이룩되지 않은 데에도 문제가 있다.
특히 서울특별시와 부산직할시에서는 올해부터 실시한 연합고시에 따라 본격적인 학교 평준화 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고교수준에서까지 이처럼 많은 재수생들을 낳고 있다는 것은 고교입시제도 개혁취지에도 모순되는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수생의 문제는 그러나 제도적인 문제인 동시에 개인적인 문제라는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재수 또는 3수를 한다해도 도저히 합격의 가망이 희박한 경우에도 반드시 상급학교에 진학을 시켜야겠다는 주위의 억지 열망 때문에 젊음을 낭비하면서 그러한 젊은이들이 왜 재수라는 기다림의 골짜기 속에 움츠리고 있어야만 되는 것일까. 설령 그렇게 해서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다해서 그것이 얼마나 보다 나은 사회생활에의 기회를 약속해 준다는 보장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재수를 하는 당사자나 그들의 학부모들이 우선 냉철하게 재고하고 지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했다해서 별수가 없을 바에야 차라리 일찌감치 분수에 맞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히려 균형 잡힌 다행한 결과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진학을 단념하고 사회에 들어오는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재수생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직업기회를 개발한다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찍 일을 배워서 훌륭한 기능을 익힌 사람에게는 이름뿐인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나오는 사람에 못지 않는 물질적·정신적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있어야 되겠다.
본 난이 누차 강조한바 있듯이 적어도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의 직원 신규채용에 있어서는 학력이 아닌 학력위주의 전형을 제도화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일 것이며, 또 최근 각국에서 시도되어 이미 상당한 실효를 입증한 방송통신대학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한 일이다.
어쨌든 재수생의 문제는 해가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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