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치 감독 "낡은 공장 굴뚝 보면 온몸에 전율이 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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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데이비드 린치의 ‘무제’(‘Untitled’·27.9X35.6㎝). [사진 The Photographers’ Gallery]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전봇대와 전선, 멈춰버린 기계들,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굴뚝….

 오래전 버려진 공장만큼 을씨년스러운 게 또 있을까. 그는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고 했다. 기묘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 ‘이레이저 헤드’(1977) ‘엘리펀트맨’(1980) ‘블루벨벳’(1986)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 데이비드 린치(67) 얘기다.

 지금 영국에서는 17일 시작된 린치 감독의 사진전이 화제다. 런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에서 ‘팩토리(공장) 사진’(David Lynch:The Factory Photographs) 전시를 열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독일·폴란드·미국·영국 등지에서 찍어온 흑백 사진 80점(모든 작품 사이즈 27.9X35.6cm)을 유럽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린치 감독은 현실과 악몽의 경계가 모호한 스토리에 시각적 효과가 강렬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기괴한 영상과 사운드의 조합은 ‘린치 스타일’로 불린다. 이번 사진전도 ‘린치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다.

 린치는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공장의 다양한 풍경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아름다움을, 여성의 몸을 보며 느끼는 스릴에 비유했다. “빛이 어떻게 떨어지느냐에 따라 여체는 놀랍고 신비한 매력을 보여준다. 공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린치는 할리우드에서 일찌감치 디지털 영화를 옹호해왔다. 그러나 사진만은 아날로그 흑백사진을 고집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흑백영화와 같다. 필름으로 작업하는 사진에는 디지털이 만들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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