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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긴장의 열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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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증시가 20~29일 ‘운명의 열흘’을 맞는다. 투자심리를 억누르던 불확실성이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새해 들어 코스피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첫날(2일) 2013.1로 시작했지만 이후 보름 넘게 1950~1960선 주변에 머물고 있다. 주가 상승을 막는 요인이 네 가지나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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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 이후 다른 대기업들의 실적도 나쁠 것이란 우려가 컸다. 무제한적으로 돈을 풀어온 미국이 갑자기 돈줄을 죌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동양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중국 경제 둔화와 일본 ‘엔저(低)현상’에 대한 걱정도 주가를 누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보다 7.7% 늘었다고 20일 발표했다. 3분기(7.8%)보다는 줄었지만 블룸버그가 조사한 전문가 예상치(7.6%)를 넘어섰다. 이 덕분에 코스피에도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이날 코스피는 소폭(0.48%) 오른 1953.78포인트로 마감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수 두 가지는 아직 뚜껑을 열지 않았다. 삼성증권 김동영 연구원은 “기업들의 어닝쇼크 가능성과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축소 여부가 증시의 향방을 결정할 최대 변수”라고 설명했다. 20일 신라호텔을 시작으로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줄줄이 발표된다. 23일 LG생활건강, 24일 삼성SDI, 27일 LG전자, 28일 현대차·KT·POSCO·SK하이닉스 등 설 연휴 전까지 20여 개 기업의 성적표가 나온다.

 시장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보고서를 낸 137개 기업(삼성전자 제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는 18조5100억원이다. 지난해 초 전망치(19조8700억원)보다 7% 가까이 줄었다. 그럼에도 더 낮아질 거란 관측이 많다. 삼성증권이 자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업종별 실적전망을 물었더니 16개 중 9개 업종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SK증권 고승희 연구원은 “(기업 실적에 대해) 기대보단 우려가 앞서고 있어 주가가 단기적으로 상승 모멘텀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 실적발표를 앞두고 코스피가 급락했던 때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28~29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도 초미의 관심사다. FOMC는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완연해지자 올해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매달 850억 달러에서 750억 달러로 줄였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돈 푸는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것(테이퍼링)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회의록을 살펴보면 “2014년 안에 양적완화를 완전히 종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음주 FOMC 회의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예상보다 빨라질 경우 신흥국 시장에 몰린 달러가 선진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 변수는 21~22일 열리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다. ‘아베노믹스’를 추진 중인 일본이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는다면 국내 수출기업엔 악재다. KDB대우증권 이정민 연구원은 “일본이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물가 상승을 감수하면서까지 선제적 부양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국내 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미국의 테이퍼링 가속화, 일본의 추가 경기부양책 등이 한꺼번에 불거진다면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오태동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세 가지 악재 모두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지만 결과가 예상보다 심각할 경우 1분기에 추가적인 조정을 거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한길 기자

◆어닝쇼크(Earning shock)=기업 실적이 증권사들의 예상치(컨센서스)보다 나빠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 보통 전망치와 실적이 10% 이상 차이가 날 때 사용한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실적을 두고 국내 증권사 전망치(9조4626억원)와 잠정 실적(8조3000억원)이 크게 달랐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대의 경우엔 ‘어닝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테이퍼링(Tapering)=수도꼭지를 조금씩 잠그듯이 정부가 시장에 푸는 돈의 규모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과정(양적완화 축소)을 뜻하는 말. 지난해 5월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의회 증언에서 언급한 뒤 자주 쓰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올해부터 채권매입 규모를 매달 850억 달러에서 750억 달러로 줄인 것도 테이퍼링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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