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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수업에의 채찍질|대학교육개혁 방안의 배경과 교육계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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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교부는 29일 대학의 면학분위기조성을 위한 근본대책으로 4가지 방안을 마련, 연두 순시한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올해의 주요 고등교육시책으로 보고한 4가지 방안은 ①국가학사고시제 실시 ②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졸업 연한 단축 ③대학 연합제에 의한「기준종합평가제도」실시 ④교양과정 이수자에 대한 적성심사를 통한 전공분야 선택제 등이다. 이 4가지 방안은 현행 고등 교육 제도에 큰 변혁을 가져오게 되는 것으로 그 내용과 실시시기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중 국가학사고시제와 졸업 연한 단축 방안은 고등교육 개혁위원회의 연구결과에 따라 시행한다는 것이다.
문교부가 이 같은 방안을 구상하게 된 것은 고등교육개혁의 장기정책의 일환으로 다각도로 검토되어 왔으나 개혁시기를 서두르게 된 것은「데모」사태 등으로 인한 정상수업 부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대학은 입학하기는 어려워도 졸업하기는 쉽다』는 풍조, 말하자면 대학생들의 공부 안하는 풍토를 쇄신하기 위한 것이 문교 당국의 근본 목적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가학사고시제는「프랑스」에서 국가박사와 대학박사가 다른 것과 같이 대학 자체에서 졸업생에게 학사자격증을 주는 것과는 별도로 국가가 시행하는 학사고시에 합격하면 국가가 따로 학사자격을 주며 실시시기를 가급적 빨리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학사고시제가 실시되면 공무원 임용 등에 있어 자격조건을 국가학사증 소지자로 제한할 것 등이 예견되어 우수한 일반기업체에서도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가학사고시제는 5·16혁명 후 지난 61, 62년에 시행되었으나 대학 자율성 보장과 실력측정곤란 등에 문제점이 제기되어 철폐됐었다.
▲졸업 연한 단축 방안은 성적의 우열에 관계없이 8회(4년) 등록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는 현행제도를 개선, 성적이 특별히 우수한 학생에게는 1∼2년 정도의 졸업 연안을 단축시켜 교육비의 낭비를 없애고 전문인으로서 일찍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으로는 ①현행 1년 2학기제를 1년 3∼4학기제(Quarter System)로 늘리거나 ②1학기당 취득가능 학점을 인정하는 내용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 3∼4학기제가 되는 경우에는 미국 등 외국의 예와 같이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도 개강(Summer School, Winter School)하는「연중 무휴의 대학」(Full Time University)이 되어 학업능력이 있는 학생은 방학기간이라도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하거나 일정한 성적 이상의 우수한 학생에게는 다른 학생보다 1학기당 취득학점 상한선을 올려2∼3년 정도(4∼6회 등록)의 수업연한으로 졸업 이수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외국어 등 교양과목 중 저학년 중에서 이수하는 기초과목을 수업 받지 않고도 시험에 의하여 학점을 인정함으로써 그 과목에 대한 기초실력이 탁월한 학생들에게 시간 낭비를 줄여 주는 내용도 검토 될 수 있는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대학연합체에 의한「기준종합평가제도」(Accreditation System)는 지역별로 몇 개의 대학들이 임의로 연합체를 조직, 교수채용·봉급액·등록금 책정·학교시설 등 대학학사에 관한 여러 가지 기준을 실정해놓고 이 기준에 미달하는 대학은「대학연합체제」에 가입시키지 않는 미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대학연합체의 기준종합평가결과 모범적인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시실·연구비 보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반면 부실대학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제도가 일반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져 기업체에서도 대부분 대학연합체에 가입한 대학의 졸업생만을 채용하기 때문에 이 조직에 가입하지 못한 대학은 자연 도태된다는 것이다.
▲적성심사를 통한 전공분야 선택제는 서울대를 비롯한 계열별 신입생 모집을 하고 있는 일부 대학에서도 2년 동안의 기초교육이 끝난 후 적성과 성적 등을 종합하여 전공학과를 결정케 하려는 경향과 대체로 비슷한 내용인데 앞으로는 모든 대학에 이 제도를 적용,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야 전공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교부의 방안에 대해 교육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을 포함한 교육계 인사들은 현행 고등교육 제도를 개혁하려는 근본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 성급한 방안 내용의 결정과 관권의 깊숙한 개입은 지난번의 학사고시제의 철폐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될 염려가 짙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졸업연한 단축과 대학연합체에 의한 기준종합평가 제도는 대체로 고등교육의 장기정책면에서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응이었으나 국가학사고시제와 적성심사에 의한 전공분야선택제는 대학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 없이 관권의 일방적인 개입으로는 시행상 너무 많은 문제점이 벌써부터 예견되어 고등교육의 혼란만을 가져오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성내운 교수(연세대)는『대학교육은 초·중·고교와 달리 창조·지도자적 자질 함양과 개척자적 능력을 길러주는데 보다 큰 목적이 있는데 4년 동안의 이 같은 교육내용을 몇 시간의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으로 판별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적성검사도 전공학과별로 뚜렷한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입학시험 때와는 다른 형태의 교수·학생 사이에 더럽고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교수는 자신이 전공한 학과에 지원학생이 적을 것을 우려, 학생을 끌어들여야 하고 학생은 취업 문제를 고려, 적성과는 관계없는 학과를 지망하기 위해 적성검사를 사전에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국가학사고시제를 굳이 시행한다면 의사국가고시제처럼 정치적 입김이 스며들지 않고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규 교수(고려대)는『대학의 자율성에 맡겨 고등교육개혁「무드」를 서서히 조장하는 것은 모르나 모든 것을 법령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전제, 일관성 없는 제도의 변혁보다는 장학금을 풍부하게 지급해주고 교수·학생과의 충분한 대화 등을 통해 학업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더 긴요하게 생각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국가학사고시제가 외국의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특유의 제도이며 적성검사 문제는 외국에서도 학과별로 세분화 된 적성검사기준이 없고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처리, 참고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박준희 교수(이화여대)는『졸업연한 단축과 대학연합체에 의한 기준 종합평가 제도 등은 수년 전부터 일부 교육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온 것으로「아이디어」는 찬성하나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시기·절차 등은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학졸업연한단축의 세부방안으로 1년 3∼4학기제와 함께 학생들이 직장을 가지고도 1학기에 소수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소수학점제도(Part Time)가 검토됐으면 좋겠다고 제시했다.
문교부의 고등교육개혁작업은 이 밖에도 문제점을 갖고있는 대학정원 철폐문제·대입예비고사의 대입자격고시로의 전환문제 등 많은 과제들도 함께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교육계 인사들의 견해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연두순시에서 밝혀진 면학 분위기를 위한 근본대책은 교육계와 사회여론이 충분히 반영되어야만 시행착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심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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