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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괌도(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도민은 자동차가 소망
괌섬에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섬의 원주민인 차모로 족의 생활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옛날부터 스페인을 비롯하여 미국·일본 등의 지배를 받은 만큼 혼혈이 되어서 순수한 차모로 족은 찾을 길이 없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그렇듯이 혼혈은 평화적인 수단이 아닌 정복 적인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 섬의 벽지에 가보니 스페인의 여운이랄까 그들이 남겨놓은 유풍이 다소 남아 있었으나 주민들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민주주의사상을 짙게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사귄 어떤 시민의 이야기를 들으니 미국의 개척에 따른 영향으로 주택보다는 자동차 갖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가 부족하여 정원제가 없기 때문에 자동차들은 승객들로 초만원이다.
이 섬사람들은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강자였던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때문인지 모르나 카톨릭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스페인이 지배한 곳이 다 그러하듯이 통치와 함께 카톨릭교가 도입된 이유 때문일 것이다.
1898년 미·서정쟁의 결과 3백 50여년의 긴 스페인의 지배에서 그 통치권이 미국으로 옮겨진 뒤 하와이섬과 함께 미국 해군의 극동지구, 특히 잠수함 기지로 중요한 구실을 해 왔지만 이제는 항공기의 발달로 거대한 공군기지로서 요새화 되어있다. 비록 스페인이 오래 다스리긴 했지만, 미국의 물질문명의 영향에 압도되어 괌섬은 미국화한 느낌이 없지 않다.

<가게마다 일본상품>
이 섬은 원주민이 주인이고 미국이 다스리고 있건만 길가의 가게란 가게에는 일본 상품이 즐비할 뿐 아니라 일본상인들이 판치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는 일본이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이 섬을 군사적으로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작 군사관계 미국인과 그의 가족이 있을 뿐이다.
이 섬은 일본에는 가장 가까운 미국이 되는 셈이고, 또한 상하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신혼여행을 온 일본의 부부들도 많이 보였다.
우리 나라 신혼부부가 이런 섬에 사랑의 여행을 할 수 있을 날은 언제인가. 그런데 일본 여행자들은 자기나라 여권과 미국의 비자를 받고 미국 달러를 바꿔 가지고는 세계의 상품들, 특히 시계·화장품을 비롯하여 태평양지역의 수예품들을 사가는 것이 그들의 즐거움인 것 같았다.
여기 머무르면서 일본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른바 일본제국주의자와 후손인 젊은 세대들은 자기 전세대의 죄과는 아랑곳없이 현대를 호흡하고 있는데 자기 조상이 저지른 큰 침략 죄에 대한 성찰이나 그에 대한 참회 의식은 털끝만큼도 찾아 볼 길이 없어 아쉬웠다.

<지배했던 과거에 향수>
그들은 도리어 한때 자기 나라가 이런 섬까지 지배(침략)했던 것에 대한 향수가 앞설 뿐 도덕적인 죄의식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죄의식을 품을 겨를이 없이 오직 쾌락에만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였다.
토인비는 제1차 대전 때 자신이 영국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도리어 죄의식을 느낀다고 고백한 일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서구가 세계를 괴롭힌데 대한 참회를 하는 자세를 지니지 않았던가.
겉으로는 일본인처럼 싹싹하고 예절바른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무서운 민족이다. 그전엔 칼로 지배했고 이젠 돈으로 지배하려하고 있으니 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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