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해균 선장 "머리론 그들을 용서하나 몸은 그날을 기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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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 석해균 선장, 사진 중앙포토]

“저는 요즘도 아라이가 저를 노려보고 총을 겨누던 모습이 꿈에 나타나 땀에 흠뻑 젖은채 잠을 깨곤 합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져온 석해균 선장(61)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가늘게 떨렸다.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석 선장은 현재 안보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당시 해적들의 위협과 죽음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침착한 판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왔던 그는 현재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사령부 산하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정신교육교관(군무원 3급)으로 근무 중이다. 19일 오후 인터뷰했던 소말리아 해적 5명의 근황을 알려줄 겸, 그리고 그의 근황과 해적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2012년부터 진해 해군사령부에 있는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안보 교육을 맡고 있다. 한 강연 당 2시간씩 하는데 1주일에 3~4차례 정도 강연이 있다. 외부로 특강도 종종 나가고 있다. 그 때 그 사건(아덴만 여명작전)이 내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평생 40여년을 바다에서 살아왔는데 예전 생활이 그립지는 않은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이 견딜 수만 있다면 다시 바다로 나가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내 몸의 상태가 바다 위에서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나. 지금 하고 있는 안보 교육도 사회를 위해 보람있는 일이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석 선장의 몸은 여전히 피랍 사건 때 당한 총격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오른쪽 다리뼈에 고정한 금속 고정물 제거 수술을 받았다. 왼쪽 다리와 팔에는 아직도 고정물이 남아있다.

-지난해에도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오른쪽 다리뼈에 고정한 금속 고정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왼쪽 다리와 팔에는 아직도 남아있다. 거기는 100% 내 몸이 아니다. 왼쪽 팔다리의 근육은 일반 수준의 40% 정도다. 그래서 제거 수술이 어렵다고 한다. 잘못하면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해서 그냥 두기로 했다.”

-당신을 감금했던 해적들은 지금 대전교도소에 있다. 형기를 마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라.
”그들이라고 해적질만 하고 살 수 있겠나. 그런데 한국에서의 귀화 문제는 내가 뭐라 언급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이런 의문은 든다. 그들이 과연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반대로 그들이 비록 교도소에 있지만 1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고 다시 소말리아로 돌아갔을 때 무사히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라이 등은 당신이 찾아온다면 무릎꿇고 사죄하겠다고 한다.
”아직 면회를 간 적은 없다. 글쎄…“

-아직 그들을 용서할 수 없나.
”머리로는 용서한지 오래다. 그런데 내 몸이나 본능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저는 요즘도 아라이가 저를 노려보고 총을 겨누던 모습이 꿈에 나타나 땀에 흠뻑 젖은채 잠을 깨곤 합니다. TV나 신문에서 그들 관련 기사나 사진을 봐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다 지난 일인데…’ 하면서도 인간인지라 완전히 잊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삼호주얼리호에 함께 탔던 선원들과는 자주 연락하나
”그게… 잘 못한다. 아니,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서로 그 때 일을 잊고 싶은 것도 있고 바빠서 그런 것도 있고, 딱히 연락할 수 없는 이유는 없는데 연락이 잘 되지 않더라. 나는 이제 더이상 배를 안 타지만 나머지 선원들은 지금도 배를 타고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논란이 있다. 당시 석 선장이 누구에게 피격됐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당신 몸에서 나온 총알이 한국 해군의 것이라며 무리한 작전이었다고 비판해왔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고 새벽이라서 주변이 깜깜했기 때문에 나도 내 몸에 있던 총알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건지 모르겠다. 그때 상황을 봤을 때는 해적들이 쏜 총알일 수도 있고, 여의치않게 해군 쪽 유탄이 날아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때 우리군이 작전을 벌였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아니겠나. 소말리아에 끌려가 억류됐다면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또, 다행히 나뿐만 아니라 우리 쪽 사망자가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안보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요즘 청소년들이 성적 등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간혹 좋지 않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기성세대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삶에 여러가지 고비를 넘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요즘 생각 중이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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