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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외교정책과 한국-김영평 교수<미 「코네티커트」대 논문에서>|동「아시아」문제 국제 학술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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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은 경남 대학 극동문제 연구소와 미「뉴요크」시립 대학 정치학 문제 연구소 공동 주최『동「아시아」문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김일평 교수(미그네티커트」대학)가 22일 발표한『중공의 외교 정책과 한국』제하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주>
북경의 대 외교 전략은 주로 세 가지의 근본적인「이슈」와 관련되어 있다. 그 첫째는 미·소의 두 초강대국에 대한 중공의 전략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유럽」을 포함하는 소위「중간지대」에 관한 정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정책은 제3세계에 관한 중공의 정책이다. 이 제3세계의 정책 가운데 중요한 국면은 대만을 중국 본토에 통합시키는 문제, 한국 통일문제, 그리고「인도차이나」반도의 문제 등이다.
1970년에서 1973년간의 북경의 외교 정책은 한국전쟁의 휴전이 협상되고「제네바」협정이 체결되었으며, 그리고 주은래에 의하여 평화공존 5원칙이 발표되었던 1954년부터 1957년 사이에 중공 지도층들이 채택한 전략과 유사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수년간의 북경과 평양간의 외교 정책 기조는 제2차 혁명 내전 당시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효율적으로 이용했던 「연합전선 전략」에 토대를 두어왔다.
주은래는 1950년대 초 연합 전선 전략을 채택하여 동남 「아시아」의 비동맹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획득함으로써 「아시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러나 월남 전후의 국제 상황은 한국 전후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소련과 인도와 같은 중공의 이전 동맹국과 지원국들은 이제는 적대 진영으로 넘어갔으며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이전 적대국들은 오늘날의 우호국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북경과 평양의 새로운 세계전략은 소련의 대 중공 봉쇄 시도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과 일본을 중공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가정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중공의 대외정책 결정을 둘러싼 강·수 파간의 대결은 1970년 8월에서 1971년 여름간에 개최된 제2차 당 총회에서 문화혁명의 특징을 이루었던 과격 노선이 쇠퇴하고 온건노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공의 정책은 1969년∼70년의 호전적인 입장에서 온건 노선과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전환했다. 중공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관심은 소련의 「아시아」집단 안보체제에 의한 대 중공 봉쇄 정책에 쏠려있다.
소련의 도전에 직면한 온건파 주도하의 북경지도층은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현실화시킴으로써 이에 맞설 전략을 형성했다.
1970년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북경의 새로운 연합 전략은 한국과 대만, 그리고 월남문제와 같은 「이슈」들에 대한 중공의 태도에서 파생되었다. 사실 중공의 정책 전환은 중공·북한간의 관계 개선에 의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한은 일본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1969년「닉슨」·「사또」의 공동 경쟁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 파생되었던 북한의 호전적이고 강경한 정책노선은 1970년 말께 북경의 신 전략의 영향을 받아 대남 인민 민주혁명 전략을 택한 제5차 조선 노동당 대회를 계기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이데올로기」적 경향을 지닌 민족해방 전략 노선은 연합전선의 개념에 토대를 둔 인민 민주혁명의 새로운 전략으로 대치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 전략은 한국통일 8개항의 채택으로 결정되었으며, 중공의「유엔」수석 대표인 교관화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중공과 북한의 이익에 근거를 둔 신중하고 지속적인 신 전략은 한국통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요「이슈」, 즉 첫째 외군의 전면적인 철수, 둘째「언커크」의 해체, 세째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는 한국인 스스로에 의한 평화적인 통일 해결책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1971년 4월에서 8월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발전은 중공·북한간의 관계를 개선시켰으며 이와 같은 관계의 개선은 1971년 6월 북한 지도층이 세계 불황을 재평가하고 남한과 세계 공동체에 대한 북한의 정책을 재형성시키는 압력 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공은 북한의 외교정책 전략 형성과 한국 통일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몇 가지의 정책 대안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의 정책 대안은 한국의 통일 문제가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한국인들 자신에 의하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을 계속 지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공은 남한으로부터의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북한 지도층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현상을 수락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정책 대안은 한국의 장래에 주요 이익을 가지고 있는 4대 강국의 동의와 합의에 의하여 한반도를 중립화하는 것이다.
한국의 중립화는 「마이크·맨스필드」상원 의원이 제안한 바와 같이 4대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전제 아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한국의 위치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공이 어떠한 정책 대안을 택하든 간에 중공은 강대국 세력 정cl의 거래에 의해서 희생되기 쉬운 중소 약소국들을 보호하는데 헌신할 것으로 보인다. 즉 중공은 연합전선의 틀 안에서 강대국들의 간섭과 압제를 극복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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