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구 추모 유묵전 25∼30일 명 화랑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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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한말부터 일제 초기에 걸쳐 직업적인 서화가가 아니더라도 묵필로 소일 삼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유품은 상당히 많이 세간에 돌아다니지만 개인전 형식으로 한 자리에 모아본 예는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개중에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기피하는 경우도 있겠고, 혹은 유묵이 많다는 점에서 평가 이전으로 소홀히 하는 경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명화랑(한국일보사 앞)이 25일∼30일에 여는 석촌 윤용구씨의 추모전은 구 한말 이후의 묵적에 대하여 새로이 평가해 보려는 한 시도로 해석된다. 석촌은 말년을 서화로써 소일하며 묻혀 산게 사실이지만 역시 서화가라기 보다는 선비요, 정치적 인물이다.
1853년에 나서 1936년에 작고한 그는 순조의 외손자. 그의 벼슬은 한림에 이르렀고, 판서·대신에 임명됐으나 번번이 나가지 않았다. 또 일제가 준 작위도 끝내 거절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말년은 서화와 거문고·바둑 같은 풍류의 생활로 서거했다.
그는 호를 석촌·해친·역수헌 등으로 썼는데 문인화 특히 난초와 대를 잘 쳤고,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므로 당시 서화계에서는 능히 손꼽힐만한 선비의 한 사람이다.
많은 유묵들이 모두 흩어져 있는 터이므로 그 첫 유묵전이 수품만을 간추려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겠고 다만 그의 작품 소재를 수소문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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