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가 안보에 미친 냉전의 유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동「아시아」문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뉴요크」시립대 「버그먼」교수 주제발표>
동「아시아」문제 국제 학술「심포지엄」이 경남대학 극동 문제연구소와 「뉴요크」시립대학 정치학 연구소 공동 주최로 21일 상오 10시 조선「호텔」에서 개막됐다. 오는 24일까지 4일간 계속될 이 회의엔 국내학자 44명, 미국 학자 14명, 일본 학자 4명 등 62명이 참가했다.
이 「심포지엄」에선 ①국제관계「패턴」의 변화와 미국의 반응 ②소련과 동「아시아」 ③중공의 진상 ④동「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 ⑤약소국의 목표와 선택 등에 관한 문제들이 토론될 예정이다. 「뉴요크」시립대학 「에이브러·버그먼」교수 21일 『국제 안보에 미친 냉전의 유산』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다음은 「버그먼」교수의 발표를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미국의 안보정책은 우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1950년대에 미국의 핵무기는 절대적인 우위를 유지했으나 오늘에는 상대적 개념으로 변모했다.
SALT협정은 핵력에서 소련의 수적 우위를 가져왔고 더우기 최근 중동전에서 소련 신무기의 위력은 미국의 안보정책에 보다 신중성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닉슨」미 대통령의 중공과 소련의 방문은 냉전의 현실적인 종결과 「데탕트」의 실질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미·소간의 핵 확산 방지 협정, 우주 개발에 있어서의 공동보조, 원자력의 공동개발을 위한 노력들이 실질적으로 이것을 반영한 것이다.
월남전에 대한 미 평화주의자들의 반전 운동은 국방비의 삭감과 대통령의 전쟁 선포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60년대의 「소시지」식 군비 제한 협정은 전통적인 무장해제 협정과는 다른 것이다. 핵금 노력은 부정적인 측면보다 배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쿠바」사태는 핵실험 금지 협정을 자극했고, 1968년 월남전의 수난은 핵 확산금지를 위한 SALT협정의 획기적인 진전에 기여했다.
핵금협상에 소련은 낮은 수준의 군사력에서보다는 고 수준의 군사력에서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고, 미국은 군축은 긴장 완화와 적대에 대한 상호이해 증진이 절실하다는 소련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핵 확산 금지문제는 제한·균형·안정이라는 막연한 제안만으로는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나 동남아에서는 중공의 존재로 「데탕트」「무드」가 최소화되고 있다. 중공은 미·소의 연합에 의한 군축이나, 정치적 화해는 중공의 안보를 해친다고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미·소의 군비축소에 대한 역량은 상호간의 긴장 완화에 기여하고 국제적 세력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중동전은 초대국을 돌발 전쟁에 가담시킬 수 있으나 우호국가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자국의 안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예를 만들었고, 미국은 우호국가에 급진적인 변화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확고히 했다.
냉전 체제는 독일을 축으로 한 「유럽」체제였고, 「아시아」의 안보는 미·일 조약을 그 축으로 하고 있다. 미·일 조약은 미국의 태평양 세력에 증대한 역할을 했지만, 역사적인 관념과 지정학적인 관념에서 볼 때 일본은 독일보다는 그 중요성이 미국에 대해 약했고, 독일과 일본을 제의한 그 밖의 국가는 부차적일 뿐이다.
미국은 냉전 26년간에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아시아」에서 전쟁을 치름으로써 냉전체제에서 「아시아」와 보다 친근성을 유지했다.
지난 26년의 냉전 체제하에서 미국은 3차례의 국제 전쟁에 개입하여 왔는데, 미국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게 된 동기는 ⓛ독일·일본의 방어에 직결된 경우 ②전 식민지에 대해선 원조를 부여하되 지방과 중앙과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데 노력했고 ③군소 국가에 대한 개입은 공산 세력의 팽창이 국제적 세력균형을 파괴할 위험이 있을 때에 국한시켰다.
「유럽」에서의 긴장 완화의 정착은 소련으로 하여금 중동지방에서 미국과 맞설만한 욕망을 일깨워 줬고,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유럽」의 「데탕트」는 세계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르며 혹 다음 차례는 인도양에서 긴장이 고조되지 않을지? 중동 전「케이스」는 「데탕트」를 위한 미국의 양보를 가져왔고, 국지전의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고, 이것은 국제질서에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발발하기 때문에 초대국은 상호간의 단순한 휴전 협정만으로는 불안하여 휴전 후 정치적 해결을 초대국의 주도하에 모색하게 유도했다. 모든 국가의 안보는 강대국의 그것에 직결된다. 모든 강대국은 정치적 약탈로부터 자국을 보호키 위해 초대국을 의식하게 된다.
「데탕트」와 저지는 군비 축소에 관계되는 것이지만 주로 핵무기의 정치적 영향력에 좌우되고 있다. 「데탕트」는 긴장에 대한 인식을 변경했고, 냉전이 지니는 위협 개념을 변경시키는데 도움 줄 수 있다. 「데탕트」의 노선은 순탄하거나 직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미국은 소련에 대해 새로운 노력 균형을 위해 양보해 왔지만, 중대한 이익을 포기할 기세는 보이지 않았으며, 군사적 시위 없이는 협정이 성공될 수 없었다.
「데탕트」는 긴 세월을 통해 전개되면서 「유럽」에서는 이제 막 그 결실을 보았고, 중동에서는 그 씨를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이제야 그 기운이 태동하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데탕트」에는 중·소 분쟁과 미·소 관계가 상호 얽혀 있다. 한국과 월남의 긴장은 「아시아」의 「데탕트」를 낮추는 요인이 되었고, 이 지역에는 마치 백년 전에 영국·독일·「프랑스」세력이 운집하여 평화 지향적 세력균형을 도모했던 것에 흡사하게 지금 강대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은 비 핵 국가이지만 「아시아」에 대한 그의 영향력, 세계 경제에 대한 일본의 위력으로 인해 이제 중공에 맞서는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중공에 의한 「아시아」의 세력 재편성은 이 지역의 「데탕트」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미·중공에 대한 세력안배의 시기를 놓칠 때는 미국과의 종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고, 소련을 궁지로 몰게 될 것이다. 미·소의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영향력 증대는 중공과 일본에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데탕트」란 일본의 국익을 증진시키고 소련의 영향을 벗어난 중공의 국리를 신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