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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두 거인 일본과 중공|대결이냐 협력이냐 데레크·데이비스(파 이스턴·이커노믹·리뷰지편집장)테레크·데이비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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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원콤풀렉스』에 이견>중공의 대외관계를 운위할매 흔히『중원「콤플렉스」』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외국을 조공국으로 인식하는 중국인의 전통적 사고방식은 현 중공지도자들의 경우에도 예외일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태도는「유럽」의 비군사적「아시아」복귀를 설득하고 태국이나 한국에 주둔하고있는 미국이 미·중공화해에 방해가 안된다는 뜻을 은근히 비치고있는 중공 외교방향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중공의 외교정책은「아시아」지역에 대한 외부세력의 적절한 균형속에서 건전한 중립성을 확립하는데 있는 것 같다. 『중원「콤플레스」』를 거론하는 자들은 또 지난 60년 동안 두차례의 혁명을 겪은 중국인의 변신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다.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초상화와 마주보고있는 거대한 초장화들중에 중국인은 손문 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등「코카시아」인들이다. 중공당은 모택동 사상을 정점에 올려 놓기는 했지만, 공산주의라는 서방철학을 생활신조로 채택했던 것이다.
청년혁명가 시절의 모택동은 북경대학 도서실에 근무하면서 주로 외국서적을 통해 그의 세계관을 성숙시켰던것이다. 모는 조국의 부강을 꾀하여 외국 압제자를 물리치려는 애국적 중국 지식인들이 근대화의「심벌」동경을 성지로 생각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모 골격 일 영향하서 성숙>
일·노전쟁때 일본군이 여순에서「차르」의 군대를 격파시켰을때 모택동은「아시아」국가가 발전하면 식민세력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증거를 거기서 보았다고 모 자신이「에드거·스눈」에게 말한 적이 있다. 모의 정치·경제·군사이론의 골격은 분명 일본의 영향하에서 성숙되었다.
중공의 경제조직은 일본을 상당히 모방하고 있다. 일본의 대회사가 수백개의 방계회사를 두어 부속품을 하청시키는 방법은 중공이 현재 추구하고있는 이중경제체계의「모델」이 되고있다.
중공이 진행시키고 있는 급속한 농공 및 수출분야에서의 현대화 작업도 일본이 이룩한 기술개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하나의 증거이다. 중공은 미국과 「유럽」국가로부터「콩코드」·「보잉」등 항공기를 도입했지만 알짜 구입처는 일본이었다. 중공이 최근 일본에서 도입한 것 중에는 거대한 철강공장, 4천만「달러」짜리 화력발전기2대, 4천만「달러」짜리 비료공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북경∼광동 철로의 보수와 조선시설 확장, 합직, 전자공장신설 등 계획에 대해 기술원조를 청한 곳도 일본이었다.
물론 중공은 60연대 이전 소련에 기술원조를 의존했다가 당한 위격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는 어느 한 국가에 자원과 기술을 의존하지 않으려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중공지도층이 자력갱생이라는 엄격한 원칙을 크게 수정한 것만은 사실이다. 자력갱생 이론을 간과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발전도를 둔화시켰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 대부분의 중공 산업이 갖고있는 비능률적인 구식시설을 최신형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시설을 현대화하기로 한 결정은 필연적으로 외국으로부터「플랜트」와 기술을 도입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수반했으며 그 결과 각국의 「오퍼」중에서 가장 유리한 차관을 또한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 중공시장 개척에 성공>
일본은 이 열강의 중공시장 개척경쟁에서 이기고 있다. 일본상품은 구미의 것에 비해 훨씬 더「아시아」적 입지조건에 적용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값싼 수송비용과 원가의 덕분으로 대중공 경쟁에 있어 유리한 입장에 있다.
일본로서는 대외무역을 과거의 비율로 계속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중공이라는 시장이 필수적이다. 동남아 시장이 비록 양적으로 불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중공에 비할바가 아니다. 따라서 경기성장의「다이너미즘」은 서로가 고전적인 상호 보완관계를 내재하고 있는 일본과 중공을 접근시키도록 되어있다.
세계정치의「다이너미즘」역시 양국을 서로 접근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닉슨·쇼크」가 있기 전까지의 일본은 미국이 마련해 준 핵우산 아래서 외교정책의 불화상태에서 빈둥거렸다. 일본외교는 미국에 대한 추종만으로 족했다. 일본은 외교적으로 저자세를 취하면서 모든 비상업적 외교문제는 시장개척과 돈벌이에 종속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나「닉슨·쇼크」는 이러한 태도에 일대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자민당은 북경지도자들의 소망대로 좌등수상을 밀어냈던 것이며 새로 당선된 전중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굳혀줄 총선을 기다리지도 앓고 헐레벌떡 북경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 이후 일본내 좌파는 미국이 일본을 자기의 하수인으로 삼아 「아시아」지역사회의 움직임에 역행하도록 강요하고있다고 비난하게되었고 우파에서는 미국식 소비문화가 일본의 전통적 순수성을 오손한다고 비난하게 되었다. 미국이 월남에서 맛 본 패배와「워터게이트」추문은 이 좌우파의 주장을 더욱 강화시키게되어 일본의 대미 자주성회복을 부채질 할 것이다.

<대소위협 양국 함께 느껴>
최근 친「이스라엘」정책을 포기하고 친「아랍」으로 돌아선 일본의 정책전환에 대해 혹자는 일인인이 지조가 없다든지 너무 압력에 나약하다는 냉소를 보내고 있지만 이 외교변환의 촛점은 기신이 전환이「워싱턴」의 의사에 대한 일본외교의 첫 거역을 뜻했다는데 있었던 것이다. 중공은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있지만 일본이 소련과 손을 잡는 것도 역시 두려워 하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들이 소련의 위협에 대해 일본과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중공은 또 일본의 대소 북방 도서반환 요구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자위대가 기동훈련을 할 때 가상적을 소련으로 잡는다는 사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호·불가침조약과 같은 형식으로 일본 무기가 중공에 대해 겨냥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선 경우 중공이 일본의 재무장을 크게 반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며 같은 이유로 북태평양조약기구와 같은 것이 등장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과 중공이 갖고있는 상리한 이념과 사회체제가 양국의 접근을 재촉하는 동력에 가할 제동을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중·소분쟁이 보여주듯이 공유한 철학은 공유한 이해관계보다 더 심각한 이견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을 접근시킬 촉매는 그밖에도 있다. 동북「아시아」는 세계 공업집결지중의 하나이다. 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한반도는 남북이 다같이「아시아」의 기준으로는 고도의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상당히 발달된 중·경공업을 갖고있다. 동쪽에는 일본이라는 경제거물이 도사리고 있고, 북으로는 중공의 공업심장부인 만주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북경을 위시한 중국 본토의 공업지대가 널려있다.

<양국협력의 구심력 고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할 때는 미래학의 이상향보다 이와 같은 공업의 밀집상태에 작용하는 현실적인 구심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럽」은 두차례에 걸친 대전을 겪고서야 이제 공동이념체로서의 자각을 하게 되어 공동시장을 수립했는데 일본과 중공도「유럽」의 슬픈 예를 따라 오랜 기간의 분쟁을 거쳐서야 비로소 협력의 유연성을 자각하고 뒤늦게 공동시장을 형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과 중공이 서서히 자각하게 된 상호 공통이익점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최근에 중공이 발표한 혁명「오페라」의 주제가 전쟁시기의 문화운동이었다는 사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의 오류를 범하여 『중원「콤플렉스』나 이념의 갈등, 구원, 그리고 상리한 사회체제를 과장하여, 현실속에서 이들 장애물에 대해 작용하고있는 상호인력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더구나 위험한 사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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