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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반 일 민족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동남아 순방중인 일본 전중 수상은 도처에서 반일시위에 부닥치고 있다. 「마닐라」에서 전중수상은 비 정부의 요구 조건을 태반 물리치고, 일본은 동남아국가들의 자결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며, 『이들 국가들의 경제적 자립 노력을 방해하지 않고 동남아의 발전에 기여함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냈지만, 태국과 인니에서는 전중의 방문이 도리어 이들 국가의 반일감정을 더한층 악화시키는 계기를 조성했다.
「냉혹한 경제동물」로 불리는 일본의 경제진출에 대한 동남아 제국의 「내셔널리즘」적인 저항은 결코 작금에·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들 제국은 2차 대전 이전 및 2차 대전. 과정에 있어서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의 이름으로 본 일본의 식민지적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2차대전 이후 독립을 달성한 나라들이다.
이들 제국은 정치적인 독립은 쟁취하였지만, 누적된 빈곤과 구 식민통치의 잔재, 그리고 공산 침략의 위협 때문에 경제 자립을 이룩하지 못해 몸부림 쳐왔다.
1950년대 미·소를 양극으로하는 냉전대립 때문에 신속히 독립·부흥을 이루어 놓고, 장기에 걸쳐 고도성장을 지속해온 일본은 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동남아 일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이들 제국을 경제적으로 종속화 시켰다. 그러므로 이들 제국이 본능적인 「내셔널리즘」의 감정에서 반일 저항 운동을 벌이게 되었음은 자연의 추세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동남아제국의 반일 「내셔널리즘」은 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원한과 신 일본의 경제적인 신 식민주의에 대한 반감이 겹쳐있는 탓으로 매우 뿌리깊은 것이다. 여기 일본이 반성해야할 문제는 그들 자신은 이미 제국주의 침략정책을 포기하고 평화일본으로 경제적인 번영에만 주력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동남아 제국이 흔히 오늘의 일본을 가리켜 다시 신식민 주의 국가로 보려고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에 60년대 이후의 일본이 이들 개발도상에 잇는 국가에 대해서 돈벌이에만 급급하는 정책을 쓰지 않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개발수입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나갔다고 하면 또 만약에 일본이 이들 나라 국민들의 복지 및 문화 향상을 위해 기본적인 협력을 다소라도 해주었다고 하면 이들 제국은 일본을 결코 적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인 실리 추구를 위해, 현지주민들의 민족주의적인 요구를 전적으로 외면하고, 또 엥화의 위력을 빌어 안하무인 격으로 매춘관광을 하러다닌 결과 등이 오늘날 동남아 제국으로 하여금 일본과 일본인을 불신, 경계하는 감정을 뿌리깊게하고 만 것이다.
지금 일본은 석유파동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고도성장의 정책을 안정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본경제의 감속경향은 발전도상국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일본으로 하여금 어쩌면 더욱 악착같은 경제동물로 화하게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에 일본이 현재의 경제적 난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전 이상으로 이기주의와 근린 궁핍화 정책을 추구한다고 하면 그들은 동남아 일대에서 사면 초가의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주로 미국의 비호하에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고 세계에서도 굴지의 경제대국이 딘 일본이 진정으로 동남아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할 생각이 있다면 좀 더 거시적인 시야에서 발전 도상국의 경제자립과 정신적·문화적인 유대강화에 성의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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