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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정책을 탈피할 단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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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 통화 파동, 원자재난 유류「쇼크」 등 73년은 국내외적으로 다사 다난한 경제 기류가 충일된 한해였다. 세계적인 호황의 반동으로 73년 하반기부터 경기 후퇴 증세가 나타나 74년의 경기전망의 불황 속에 「인플레」가 진전될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하고 있다. 이어 74년의 경제는 「에너지」고 가격 시대가 연출하는 달갑잖은 후유증도 길게 꼬
국내경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물음은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사항이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른바 전통적인 예측 기술이라는 것이 과거의 추세를 연장하고 변화하는 상황을 조정하는 정도이나 그러한 예측이 적중하기 위해서는 추세나 구조변화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안정성을 찾기 힘드는 근자의 내외경제 동향으로 말미암아 이른바 과학적 예측 기술이 적용될 여지는 매우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많은 지표가 방향 감각을 잃은 상황에서는 이론적인 인과관계를 근거로 해서 대세를 파악코자하는 연역적인 방법이 이른바 과학적이라는 귀납적 방법보다 더 과학적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과거의 추세가 예측에 도움을 주기 힘드는 것이기 때문에 연역적 방법을 적용해봐야 한다면 그만큼 주관적인 전망이 되는 것이지 객관적인 예측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제약을 인정하고 국내 경기를 전망코자 한다.

<세계 경제 3측면서 평가>
우리의 무역 의존도가 60%수준에 있으며 73년도의 이례적인 고율 성장이 연율 80%수준에 이르는 수출 증가에 주도된 것이라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를 전망하지 않고서 국내경기를 전망한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그러므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를 대세상으로 나마 평가하고 그로부터 우리의 경기를 전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73년도의 세계 경제는 자원「인플레」와 그에 따른 투기적 매점의 격화로 이례적인 무역신장을 기록한 한 해였지만 중동전의 폭발로 파생된 원유 공급 제한과 그 가격의 파격적인 인상으로 세계 경제 구조를 재편성케 하는 결정적인 새 국면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74년도의 세계 경제는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게 되었다.
첫째는 유류 파동이 일기 전에도 지나친 자원「인플레」때문에 세계 경기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현실이었다. 둘째는 그러한 대세에 유류 파동이 일어남으로써 「에너지」부족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제로」성장 전망이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제로」성장전망에 다시 찬물을 끼얹은 것이 12월22일에 있었던 「아랍」원유 가격의 1백28% 인상 조치였다.
이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74년도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킬 것은 분명한 것이며 그 대세는 세계경제구조 변화를 위한 재편성 과정의 시발점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위의 세 가지 측면은 미국 경제의 경제를 통한 「달러」의 복권 경향으로 귀결될 추세임을 시사한다. 이는 반대로 일본·EC경제의 악화를 뜻하는 것이므로 세계 경제는 만성적인 유동성 과당상태에서 유동성 부족 상태로 전환되어 갈 것을 예시한다. 따라서 일본의 「엥」화나 EC제국의 통화는 평가절하 과정을 겪어야 하게 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국제통화 질서 및 무역 질서의 재건은 적어도 당분간 불가능하게 되었다. 통화파동의 계속과 자원「인플레」「오일·인플레」의 계속은 국제 유동성의 수축경향과 상승 작용을 해서 국제적인 고금리 시대를 장기화하는 반면 국제무역의 순조로운 신장을 저해함으로써 「에너지」부족과 「에너지·코스트」저력으로 오는 세계 경제의 정체 과정을 심화할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 경기가 일반적인 침체 과정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인플레」는 누적적으로 진행된 것이며 그 사이에 국제 통화 파동이 계속되는 한편 고금리 시대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전망이라면 국내 경기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막중하다.
첫째 80%수준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한 73년의 수출 경기로 말미암아 73년도의 산업투자는 엄청나게 늘어나 버렸다. 광공업용 건축허가 면적이 전년비 4배나 늘어난 경로로 시설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출전망이 반전되었음을 중시해야 한다. 73년11월부터 수출실속 및 신용장 내도액이 반전되고 「크레임」발생율이 높아짐으로써 외환수위 전망을 급변시켰으며 이는 74년 상반기 중에 회복될 가능성이 적어졌다. 또 일본의 불경기로 우리의 외환수급에 큰 기여를 하던 관광수입도 11월부터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설 확장과 수출 수요의 급변으로 파생되는 모순은 기업부실화 및 실업의 증가와 외환 부족 현상을 불가피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일 수출고 줄어들 수도>
둘째 우리의 수출시장 구조는 미·일 시장에 편중되어 있으며 수입시장도 원유를 제외하면 같은 구조이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유류 제한과 유류 가격 인상으로 심각한 국제 수지 적자에 직면하게 되어 있어 「엥」화 절하가 불가피하다면 대일 수출증가를 기대하기보다는 감소할 것을 우려해야할 상황으로 급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 구조상으로 보아 유류 가격 인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국제수지측면에서 본 것이지 미국 경제의 성장력이 제고된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2%내외라고 예상한다면 대미 수출 증가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수출 중 대미·일 수출 비중이 근 80%수준에 있음을 고려할 때 수출 전망이 어두운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며 어쩌면 74년에 73년도 수출실적을 약간 상회하기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해야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내수 산업의 가동도 문제>
세째 우리의 국내 산업은 원자재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적 약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공급이 여의치 못하면 수출은 물론 내수산업도 가동률을 떨어뜨려야 할 입장에 있다. 73년12월부터 일본에 의존하던 석유 화학 중간제품의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원자재 문제가 불황을 심화할 가능성은 매우 큰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철·원면·원목·「펄프」 등 기본 원자재 수입 전망이 밝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식량·사료용 곡물 수입 전망도 밝지 못하다.
네째 주요 원자재를 충분히 공급하려면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t당 1백60「달러」수준의 쌀을 6백90「달러」·65「달러」수준의 소맥을 2백30「달러」로, 그리고 「배럴」당 2·8「달러」의 원유를 8∼10「달러」수준으로 들여올 만큼 주요 원자재 가격은 지난 1년반 동안에 폭등했다.
이러한 주요 수입인 원자재의 폭등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정책기조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74년도 수입수요는 52억「달러」내지 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차관 도입 수준을 연간 10억「달러」수준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수출실적은 42억「달러」에 이르러야만 외환부족을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며 이는 73년 실적대비 40%의 수출증가를 뜻한다.

<낙관 못할 외자도입 전망>
다섯째 국제 유동성 사정이 과잉공급 상황에서 탈피하여 부족 현상도 반전되어 갈 것이며 그 때문에 고금리시대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 외자도입 전망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기도입 외자에 대한 원리금 상환부담은 국제「인플레」의 진전으로 매우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외환 수급면에서는 무거운 부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우기 수출 신장률이 올해에 최저 필요선인 40%수준에도 미달되는 경우에는 원리금상환부담이 큰 퇴조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을 예상하기는 힘들지 않다.
또 그동안의 외자도입 구조를 보면 점차 서구 자본도입은 줄어드는 반면 일본자본 도입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경제의 반전으로 일본자본 도입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것임을 예상한다면 외자도입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그 때문에 외화 수급상 수출 증가율은 최저 필요 증가율인 40%를 월등 상회해야 외환 부족 현상이 파생되지 않을 것이다. 국제 경제 동향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우리도 불황 국면에서 「인플레」의 누진 과정을 어차피 겪어야 할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불황은 어느 정도이며 「인플레」는 어느 정도 진행될 것이냐를 좌우하는 요인은 정책에 달려 있음도 분명하다. 앞으로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선택할 것이냐에 따라서 불황과 물가 상승률은 달라진다면 당연히 정책 방향을 전제로 전망해야한다.
첫째 정부가 기존 정책을 크게 수정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경기를 전망할 수 있다.
이 경우 수입 원자재 및 원유가격상승이 미치는 「코스트」상승 요인과 통화 측에서 파생되는 수요 압력이 물가 동결조치와 충돌하여 기업 부실화가 촉진되고 저 가격에서 오는 소비촉진 효과로 외환 수급 사정은 급속히 악화되어갈 가능성이 크다. 72년 및 73년도의 통화 공급율은 연율 40%수준을 상회했으므로 수요압력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는 일부 물가상승으로 흡수되고 일부는 실물증가로 흡수되는 것이나 같은 기간 중 실물 경제는 30%정도 증가했을 것이므로 그 동안 양성화한 물가 상승률 20%수준을 감안할 때 아직도 50%수준의 물가 압력은 잠재되어 있다.
이는 연내에 양성화할 공산이 짙다하겠으나 이를 일시에 허용하는 경우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므로 물가동결 조치는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물가는 계속 잔재적 저력으로서 존속하는 한편 도산과 실업이 늘어나는 경향이 강화할 것이다. 만일 국제 경제 사정으로 한층 증가의 최저 필요선인 40%선이 깨지는 경우 기존 정책의 고수는 외환 압박 때문에 환율 조정을 불가피하게 할 가능성이 크며 그때 잠재적인 물가압력이 양성화할 것이다.

<「제로」성장선서 정비를>
그러나 기존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환율조정이 불가피하게 되는 경우 정책 조정의 적기를 놓치게 됨으로써 오히려 성장보다는 결과적으로 절대적인 후퇴 국면을 자초할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가 기존 정책을 대담하게 전환시켜 「제로」성장선에서 재정비 정책을 집행한다면 국내 불황은 침화 하지만 이 경우 외환 압박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불황 정책을 선택한다면 수요 여력은 소멸되어 가는 것이므로 수입 원자재 「코스트」상승분만 물가로 반영되는 수준에서 물가는 안정되어 갈 것이며 수출 경쟁력도 국내 초과 수요를 창조하는 기존 정책을 선택하는 경우보다 훨씬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불황 정책을 집행한데 파생되는 국민의 생활고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후자의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국민 경제적으로도 안전하고 모순이 적다.
그러나 어느 경우를 선택하든 국제경제의 또 다른 유리한 급변이 없는 한 과도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는 반면 정도의 차는 있지만 물가는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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