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 "주택구입 용도때만 대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가 2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의 부실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주택 구입을 위해 담보 대출을 받은 경우는 주택 수명과 비슷한 정도로 만기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연체를 줄이고, 내집 마련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 가운데 57%가 주택 구입용으로 들어갔다. 이런 제도는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있다. 그동안 담보 대출은 3년, 신용 대출은 1년마다 만기가 돌아와 대출자들이 상환 압박에 시달려왔다.

담보대출은 올해만 상환부담액이 24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은행 돈이 가계대출 쪽으로 몰리며 부동산 경기를 자극하고, 대출금 갚기를 미루는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미국처럼 30년 만기도 고려했으나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너무 길다고 판단, 일단 최대 20년 만기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시행하나=국내 은행들이 취급하는 예금 등 수신상품은 대부분 만기가 1~3년이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20년씩 장기간 대출해주기 어려웠다. 미스매치(조달.운영의 만기 불일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은 HSBC 등 외국계 은행과 국내 은행 일부에서 장기 대출을 제한적으로 취급하는 정도다.

윤종규 국민은행 부행장은 "장기 대출상품을 늘리고 싶지만 은행권에선 이제 겨우 10년 만기 채권이 나오는 정도"라며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이 먼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 은행이 확보한 주택 담보를 한꺼번에 모아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주택저당채권회사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가 20년 만기 주택저당채권을 발행해 기관투자가 등에 팔고,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뗀 후 대금을 은행에 넘기는 형태다.

현재 주택저당채권회사는 민간회사인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가 있다. 그러나 자본금이 1천1백24억원에 불과해 채권 발행이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는 자본금을 대폭 늘려 신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기업 부실채권을 처리했듯 이번에는 가계대출 문제를 주택저당채권회사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대상인가=그동안 주택을 구입하면서 담보 대출을 받은 가계는 앞으로 20년 만기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은행이 담보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면 3년 만기로 계약을 끝낼 수 있고, 대출자가 20년 만기를 원하지 않으면 종전처럼 3년 만기로 재연장할 수도 있다.

주택을 새로 구입할 때도 20년 만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주택을 사면서 2천만~3천만원을 먼저 내고, 나머지는 그 주택을 담보로 20년 동안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형태다. 미국의 모기지 론과 비슷하며 처음에 구입자금 부담을 더는 효과가 있다.

◆과제=20년 만기 대출의 금리가 3년 만기에 비해 너무 높으면 대출자들이 외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금리 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세제 혜택 등의 보완책을 검토 중이다.

주택 담보 대출의 만기가 장기화되면 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주택 구입 용도일 때에만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소 수조원 이상의 장기채권이 시장에서 제대로 팔릴지도 미지수다.

증권업계에서는 장기채 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기관투자가들이 장기 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실정에 비춰 발행 초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현곤.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