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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리·폴리틱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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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텔리·폴리틱스」(Tele-politics)란 신조어가 있다. 「텔리비젼」과 정치학이 합쳐진 말이다.
전자시대의 기술들은 새로운 형의 인간을 만들어 내고 또 새로운「타입」의 정치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텔리·폴리틱스」라는 것이다.
「텔리비젼」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인간을 신경세포 인간이라고 한다. 신경세포란 중추신경조직에서 어느「메시지」를 받으면 그것을 저장해 두었다가 송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런 신경세포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인간은 합리주의적 원리가 지배하던 인쇄물 시대의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
신경 세포인간은 첫째로「이미지」(허상)를 믿는다. 그리고「텔리비젼」은 쉴 사이 없이 이런「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전자시대에서는「이미지」를 얼마나 근사하게 꾸며내느냐가 문제된다. 전자시대에 있어서는「텔리비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는 것도 물론이다.
「텔리·폴리틱스」를 가장 잘 터득했던 정치가는「케네디」였다.
따지고 보면「케네디」의 정책 중에서 성공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민은 그를 가장 위대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가「텔리·폴리틱스」에 성공한 때문이다.
「닉슨」이「케네디」에게 진 것도 사실은 투표장에서는 아니다. 「텔리비젼」정치가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생김새부터가「케네디」만 못했다. 「케네디」는「제스처」하나 하나가 매끄러웠다. 「닉슨」은 모든게 어색스러웠다. 그것은 시청자들의 눈에는 자신과 능력의 결핍으로 보였다.
「닉슨」도 그가 지난 68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긴 것은「텔리·폴리틱스」의 요령을 뒤늦게 나마 터득한 덕분이었다.
그는 그해에「텔리비젼」방송을 위해 2천만「달러」나 썼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전속「메이컵」사를 두어 자기「이미지」를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제스처」도 바꾸었다. 아직도「케네디」만큼 매끄럽지는 못해도 적어도 중후하다는「이미지」는 줄 수 있게 되었다.
정치가에게 있어 웅변은 불가결하다. 웅변에는 또「제스처」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제스처」가 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그러나「텔리비젼」방송 때는 다르다. 「텔리비젼」은 누구나 안방에서 조용히 보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치 친구끼리「칵테일」이라도 나누며 담소하듯 나직이 말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케네디」는 이렇게 옥외와「텔리비젼」과를 가려서「제스처」를 썼었다. 너무 열띤「제스처」는 오히려「텔리비젼」시청자에게 저항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신경 세포적 인간에게는 실상보다 허상「이미지」가 더 호소력이 있다. 그리고 허상이 성공하려면「메시지」자체가 좀 불투명해야 한다. 너무 선명하고 구체적인「이미지」의 호소력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안경 낀 김 총리의 TV방송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새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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