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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비싸고 노조는 세고 … 인기 없는 증권사 매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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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증권사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새 주인 찾기는 난항을 겪고 있다. 증권업 침체가 날로 깊어지면서 사려는 곳이 드문데다 나온 매물들도 ‘핸디캡’ 하나씩을 안고 있는 곳들이 많은 탓이다.

 그나마 시장의 관심을 받는 건 큰 곳들이다. 지난해 이후 나온 매물 중에선 현재 우리투자증권만이 새 주인을 찾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NH농협금융이 선정돼 막판 가격 협상이 진행 중이다. 현대증권의 매각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최근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을 대상으로 매각주관사 선정을 위한 제안서를 받았다. 또 동양증권도 16일 매각주관사와 관계자들이 모여 매각 일정을 논의하는 첫 회의를 할 예정이다.

 이처럼 눈에 띄는 매물이 속속 나오면서 일찌감치 시장에 나온 이트레이드·아이엠·리딩 등 중소형 증권사들의 새 주인 찾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최대어’인 KDB대우증권조차 매각을 미루기로 했다. “매물이 많아 제값을 받을 수 있겠느냐”(신제윤 금융위원장)는 이유에서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석훈 연구위원은 “증권업의 성장 기대치가 크게 낮아져 있는데다 중소형사는 인수합병(M&A)으로 얻을 효과도 크지 못해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공개적으로 증권사를 살 생각이 없다고 밝히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6일 “증권사 인수에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증권사는) 이익에 기여하는 부분이 적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였다.

 증권사 매각의 걸림돌은 무엇보다 가격이다. 증권업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매물의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려는 쪽에선 당장 뛰어들 이유가 없다. 신한금융 한 회장이 “가격이 싸면 몰라도…”라고 단서를 붙인 이유다. 업계에선 “우리투자증권도 가격 협상 과정에서 당초 제시가보다 5% 가까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현대증권 역시 7000억~1조원 사이의 금액이 거론되고 있지만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분석이다.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매물도 있다. 동양증권이 대표적이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과 정진석 전 사장이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구속되고, 불완전 판매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는 터라 새 주인을 찾더라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여기에 투자자들의 소송과 불완전 판매 보상으로 상당한 추가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는다. 대만의 유안타증권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는 것도 국내에선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증권은 업계 최강성으로 꼽히는 노조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말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노조위원장을 면직하면서 노사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인수 후보로 범현대가인 HMC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이 거론되고 있지만 업계에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증권담당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이 2008년 지금의 HMC증권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증권업계에는 장밋빛 전망이 팽배했다”면서 “업황 전망이 180도 바뀐 상황에서 또 다른 증권사 인수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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