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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값 인상의 정책 논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비료 계정 적자를 축소시키고 가수요를 줄이고자 비료의 대농민 판매 가격을 30%인상하는 한편 정부 인수 가격은 그보다 낮게 책정할 방침이라 한다.
지난 69년 이후 5년간 비료값은 11%밖에 인상되지 않았으므로 이번 인상 계획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비료·농약값 등 농업 수입물 가격을 올리지 않음으로써 농산품 가격을 가급적 올리지 않고 증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눌러 놓았던 것을 이제 완화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비료값 자체만을 따로 떼어 말하면, 그 인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나, 이를 농산물 가격 정책과 관련 시켜서 평가한다면 여전히 문젯점이 많다.
정부는 올해 쌀 수매 가격을 10%밖에 올리지 않았는데 반해서 비료값을 30%나 올린다면 내년도 농가 수지는 상대적으로 올해 수지보다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개악된다는 문젯점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비료값 인상이 비료 계정 적자를 구실로 불가피하다면 그에 비례해서 추곡의 정부 수매값도 더 올려야 마땅할 것이다. 추곡 수매가를 먼저 결정하고 비료값을 뒤따라서 인상시키기 때문에 추곡 수매 가격 인상의 실질적 의미는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일반 물가 상승률이 지수상으로도 연율 10%를 초과할 것이라고 본다면 비료 가격의 30%인상은 농가 수지의 실질적인 후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비료 가격이 지나치게 싸서 비료 계정 적자가 누적되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 했다면, 같은 논리로 양곡 관리 적자를 누적시키면서 밀가루 값을 누르는 것도 문제가 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도시 소비층을 보호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감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실정 하에서 하물며 상대적으로 빈곤한 농민을 위해서 재정 적자를 감수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재정 적자를 구실로 해서 비료 가격을 인상한다면 당연히 보다 큰 양곡 관리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밀가루 값도 인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밀가루 값을 인상하게 되면 쌀값도 다시 책정해야 한다는 난제가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나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부분적으로만 조정하는 것은 정책 논리가 아니다.
솔직이 말하여 지금처럼 가격 정책이 원칙 없이 편의대로 집행된다면 무엇이 정당한 가격 체계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자본제 경제의 장점이라 할 자원 배분의 효율화라는 명제마저 부인하고 들어가는 격이 된다.
수입의존도가 매우 큰 우리 경제에서 수입 원가조차 반영될 수 없는 경직된 가격 정책을 고집할 때, 결국 현실적으로 품귀와 소비 촉진이라는 가장 비능률적이고 낭비적인 현상만이 노출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가격 인상을 불허한다면 철저히 불허할 것이며, 반대로 현실적 조건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원가 상승분 만큼은 자동적으로 「슬라이딩」하는 탄력성은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모든 여건으로 보아 품귀 아니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궁한 입장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근자의 경제 동향을 직시해서 가격 정책의 논리와 체계를 다시 정리해야 할 시점임을 특히 강조한다. 어차피 물가 문제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으며 때문에 가격 정책을 탄력화 시키는 대신 대담한 총수요 억제 정책을 강력히 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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