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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한국선 첫발도 못 뗀 원격진료, 세계는 500조 시장 주도권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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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계획이 시작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반면 미국·영국 등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우리나라만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도 원격진료를 계기로 IT와 의료서비스의 융합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4년 후 5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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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원격의료 범위를 축소해 수정안을 내놓았다. 동네의원에서 감기 같은 경증 질환과 당뇨·고혈압 만성질환 환자 위주로 축소해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3월 초 집단휴진을 추진하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동네의원 개업의사들은 원격진료의 봇물이 터지면 좋은 장비와 인력을 갖춘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것이라고 걱정한다. 같은 이유로 2010년에도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계획은 무산됐다.

 하지만 선진국은 원격진료에 적극적이다. 나라마다 의료체계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IT를 활용해 기존 의료서비스의 빈틈을 보완하고 고령사회 의료비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44개 주에서 1997년부터 노인 대상 공공의료보험 ‘메디케어’를 통해 원격진료에도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원격진료 보험 적용 대상을 지방 거주자에서 대도시 근처 거주자까지 확대한다. 땅덩이가 넓고 진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원격진료는 대면진료 보완 수단으로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일본도 97년부터 만성질환 환자의 재진과 재택 상담에 원격의료를 도입했고, 싱가포르는 2015년까지 곳곳에 흩어진 개인 의료정보를 통합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도 노인들에게 IT 기기를 주고 의료·건강관리·보안·응급시스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지난해에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대도시에는 의원이 많지만 도서벽지에는 공중보건의마저 부족할 정도로 의료자원이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격진료를 포함해 IT와 의료를 접목한 ‘유비쿼터스 헬스케어(유헬스케어)’는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꼽힌다. 영국의 BBC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유헬스케어 산업은 2018년 4987억 달러(527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영상회의 전문업체인 비됴(Vidyo)는 지하철역이나 편의점 등 도시 곳곳에 설치하는 간이 진료실 ‘헬스스팟’을 선보였다.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방문해 의사와 양방향 고화질(HD) 영상기기로 상담과 처방을 받는 방식이다.

 각종 디지털 기기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도 의료의 질을 끌어 올리고 있다. 미국·영국에서 처방전을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알약 ‘헬리어스’는 약에 포함된 센서가 위에 머물면서 생체정보를 의료진에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의사는 환자가 제 시간에 약을 먹었는지, 환자 몸에 이상이 없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을 갖춘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인 건강관리 앱도 규제 탓에 내놓지 못한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교수가 환자 5000명의 데이터를 활용해 전립선 암 위험도를 계산하는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에 해당되니 배포를 중단하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유헬스케어 시대를 맞아 의료산업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IT의 발전이 동네병원에 가져올 변화가 예상됐는데도 의료계와 정부는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상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원격진료 찬반을 넘어서서 환자가 스마트기기로 자기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대에 맞는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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