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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일인이 본 한국 바르텍 작 『코리아』도문본 영인의 내용 한봉흠(고대 교수·독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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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벽안에 비친 「코리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알려주는 거울로 영·미 문헌은 그런대로 많이 접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러나 독일인의 한국관을 엿볼 수 있는 독문 서적은 아주 적다.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쇄국의 문을 두드린 한국기행 『금단의 나라 코리아』(Verschlossenes Land Reise nach Korea)가 고작이었다.

<귀중한 사진 기록들>
이번 독일문화 연구소(고대부설·소장 현승종)는 한국관계 독문 서적 영인 사업의 하나로 19세기 독일의 세계적 여행가 「에른스트·헤세·바르텍」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의 여름 여행』이란 부제가 붙은 『코리아』(고려)를 영인 간행했다.
1895년 독일 간행의 이 책표지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독문 제목 외에 「허세화 고려」란 한자가 장식된 양장본이다(46배판·2백20면).
이 여행기의 가치는 1894년 여름, 아직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잔영을 간직한 때의 것이요, 특히 청·일 전쟁 전야에 있어서 고요 속의 스산한 예감을 가지며 현대사의 단면을 증언한 생생한 기록인 점에 있다.
영인이나 일인과는 달리 비교적 중립적 관점에서 사라져 가는 대한제국의 비극과 그 갱생에 대한 희망을 밑에 깐 점에서도 호감이 간다.
작자 「바르텍」은 전문적 여행가요 지리학자로서 미국 「캐나다」「멕시코」「아프리카」등 전 지표를 돌아 한국을 둘러보고 귀국하여 12권 째로 이 「코리아」를 쓴 점에서 결코 피상적이 아닌 각 국의 비교 분석과 지역 연구적인 안목도 갖추고 있다. 다만 우리와는 이질적인 문명과 가치관의 색안경 때문에 이미 황혼에 접어든 1890년대의 구한국을 목도한 점에서 간간이 오해도, 약자에 보내는 연민도, 빗나간 관점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 여행기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마저 다시는 볼 수 없는 망각의 저편에 매몰된 옛 풍습·생활양식·사회제도 등을 서구적 관점과 기행문의 문체로 기록에 남긴 점도 높이 살만하고 20여장의 생생한 사진기록도 귀중한 것이다.
특히 1894년은 삼남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해였으므로 미리 제정했던 전국 일주 여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의 행각은 그 혁명의 소용돌이 속을 여행한 셈이다.
그리고 청·일이 한반도에 올라와 일전을 겨루기 직전의 양군을 목격했다.
아산제에 상륙한 청군과 대결하기 위해 변장한 모습으로 제물포에 잠입한 일군을 보았고 일본 우선회사 소속의 기선 속에서 일군 후방의 짐꾼 노릇할 「쿨리」로 가득찬 선실에 동승했다고 한다.

<극에 달한 부정부패>
그 기선의 항로인 상해와 서해에서는 전투준비를 완료한 일본 군함을 목격했고 필경 청·일 양군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리라는 예감으로 전율했다고도 쓰고 있다.
이 나라에 대해 비교적 광범한 식견을 갖추려고 「바르텍」은 구한국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다.
이미 조락한 왕실의 기력을 말해주는 듯 황폐한 궁궐들, 관규는 문란해져 매관 매직이 성행하고 과거제도도 유명무실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관직은 백성을 최대한으로 쥐어짜서 치부하는 자리가 되었고 백성들은 너무 수탈에 지쳐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할 일없는 서민들의 일상사는 싸움질 아니면 투전판으로 소일해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반면에 양반층은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나라도 드물 것이라』고 통탄했고, 부정부패의 전형적 표현으로 돈이면 불가능이 없다는 실례를 들었다.
그는 이 나라가 빈곤한 까닭을 두 가지로 들고있다.
하나는 국상이 나면 반년이나 계속되는 장례에 의한 막대한 낭비를 비롯한 관혼상제 때문이고 또 하나는 청나라 사신을 과중하게 후대 영접하는데 따른 영빈비의 갹출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가 여행 중 느낀 한말의 진풍경은 개혁가 김옥균의 시체를 각을 떠서 오찰한 처참한 광경, 긴 머리를 늘인 총각들을 처녀로 착각한 경우, 아무데나 마구 구정물을 버리는 악습에서 그것을 핥는 똥개들의 더러운 모습에 이르기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름다운 지상 낙원>
비록 그것이 외국인 앞에 부끄러운 추태이긴 하나 그것이 지난날의 진실을 증언한 이 민족의 자화상을 보게 해주는 거울이니 어쩌랴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라의 대자연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정취는 실로 지장의 아름다운 낙원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들에서는 사슴이 울고 그늘에서 신비로운 산삼이 졸고 있으며 열강의 시달림만 없다면 『20년 안에 이 지구상에서 이 나라보다 더 비약적 발전을 할 나라는 없으리라』고 축복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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