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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모스크바」견문 1주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은 여자가 움직인다|악단 지휘자까지도 여자>
소련 정부를 움직이는 건 누구냐? 『그거야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게 아니냐』쯤으로 알고 들어와 보니까 그게 아니다. 소련이란 땅 덩어리를 움직이는 건 여자다.
실없는 소리 같지만 적어도 실무급 만을 놓고 볼 때 하나도 에누리없는 얘기다.
소련을 통틀어 정부 관리 1백 명 가운데 그 반 이상인 58명이 여자다. 공식 통계가 이러니 소련을 움직이는 건 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상 「모스크바」에 와보니 소련이란 도대체가 닥치는 대로 여자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그랬다.
비행장에 나와준 「인투어리스트」의 영접원도 여자, 「택시」운전사도 여자. 「호텔」로 와보니 더하다.
기다란 반월형 「리셉션·데스크」에 쭉 앉아있는 10여 명의 직원들, 환전계, 층층마다 동상처럼 도사리고 앉아 열쇠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수위직, 하다 못해 「바」의 「바텐더」까지도 모조리 여자다.
너무 심한 듯 해서 보따리를 방으로 날라 온 「포터」만이 기이하게 시리 남자 길래 『어찌하여 그대는 남자인고…』할 뻔했다. 전화가 안 통해 잠자코 있었지만 「호텔」에서 뿐만 아니었다.
시내 어디서나 표를 팔건, 양재기를 팔건, 「도너츠」를 말건 간에 물건을 팔고 앉아있는 사람은 일단 여자로 봐도 틀림없다.
이 정도는 또 약과였다.
「크렘린」속에 있는 거창한 궁전에 「발레」『돈·환』을 구경갔을 때다.
무대 앞 「오케스트라·피트」에서 「바통」을 맹렬히 휘두르고 있는 지휘자의 몸집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제1막이 끝나 무대에 불이 켜지고, 터져 나오는 환호에 답해 몸을 관객 쪽으로 빙그르르 돌리는 지휘자의 얼굴을 보니 또 여자였다.

<소련은 여자가 움직인다|인구도 2천만 명 더 많아>
여자를 「로케트」에 싣고 우주비행도 보내는 게 소련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교향악단의 지휘자까지 여자일 줄은 정말 몰랐다. 다짜고짜 통계를 들추게된 것도 이렇게 입이 딱 벌어졌기 때문이다.
들추어보니까 벌어졌던 입이 더 벌어진다. 우선 수효부터가 여자가 단연 상위다. 남자보다 자그마치 2천만 명이나 더 많다.
이유인즉 2차 대전 때 남자들이 무더기로 떼죽음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순전히 과부들만 가지고도 큼직한 나라 하나쯤 거뜬히 만들고도 남는다.

<소련은 여자가 움직인다|「우먼·리브」명함도 못 낼 판>
그런데 여자가 그냥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떼를 지어 사회에 나와있다. 통계 숫자 몇 개만 더 짚어봐도 알 일이다.
의사를 포함해서 전국 의료기관 「일꾼」들의 85%, 교사의 72%, 부산 실업의 85%, 하다 못해 육체 노동으로 벌어먹는 광공업 노동자의 47%가 여자들이다. 게다가 소련판 국회의원이라고 할만한 각급 「소비에트」대의원의 43%가 여자들로 채워져 있다.
일껏 남자들이 한바탕 혁명이란 걸 해놓고 보니까 깜짝할 사이에 감투는 여자들이 뒤집어쓰고 나섰나보다. 이쯤 되면 여자가 큰소리치게 됐다. 「모스크바」에선 「우먼·리브」가 명함 내놓긴 어렵게 됐다.

<「최고·최대」콤플렉스|모스크바 대 연구실 2천>
소련엔 여자도 많지만 「최고」도 많다. 얘기를 들으니 모두가 최고다. 사실 그럴 듯도 하다.
「호텔·로시아」=객실 수 6천 개. 구주 최대다. 「레닌」도서관=열람실 20, 장서 수 2천만 권. 세계 최고다. 「모스크바」대학=학생 수 1만8천, 연구실 2천 개, 「엘리베이터」1백 50대. 세계 최대다. 또 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일러준 나의 안내양 「이바노프나」양의 열성을 봐서도 더 안 붙일 수도 없다. 「프라우다」=발행부수 1천만 부. 세계 최고다. 「에로·플로트」는 세계 최대의 항공사이고 TV 탑은 5백20m로 세계 최고다. 「크렘린」대회 궁전은 좌석 수 6천으로 구주 최대다.
하나 더 덧붙일 게 있다.
「크렘린」궁 뜰에 있는 「차르·콜로콜」, 즉 종중왕이라는 이름의 대종은 높이가 19「피트」, 무게가 2백10t. 18세기 초 「에카테리나」여왕 때 만들었다는 이 종도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차르·푸슈카」(포중왕)도 16세기에 만든 대포치고는 이름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란다.
그러니까 「모스크바」사람이면 거의 누구나가 술술 외는 세계 최고란 그저 「볼셰비키」혁명이후 것만 아니라 「마트·로시아」(어머니 러시아) 것이면 일단은 자랑해놓고 볼일이라는 눈치다. 『딸꾹질해서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진 건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찾아보면 필경 소련 땅 어느 구석에서 나올게 분명하다.

<「최고·최대」콤플렉스|애국심의 한 파생적 의식>
실상 어느 나라 치고 제 나름의 세계 최고 기록 몇 개쯤 안가진 나라란 드물다. 주먹만한 나라 「헝가리」에서도 그런 게 무더기로(사실이라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쏟아져 나와 놀랐었다. 그러니까 땅덩어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소련에서 그런 것들이 수없이 나온댔자 이상할 게 없다.
제 나라, 제 민족 자랑이란 어디서나 공통적인 거고, 조금도 떳떳치 못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경우 한가지 괄목할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이런 최고라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하나의 집념이나 「콤플렉스」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콤플렉스」가 「아트·로시아」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러시아」적 애국심의 한 파생으로 의식되고,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의 하나로 소련에는 『2차 대전』이란 말이 없다. 붉은 광장 한 모퉁이에 있는 역사 박물관 속, 2차 대전을 기념하는 상설 전시실도 『위대한 애국 전시실』로 통한다.

<「최고·최대」콤플렉스|제정시대부터 비롯된 듯>
소련은 신화가 많은 나라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을 들자면 『소련은 무엇이든 「최고」를 만들어내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리·가가린」도 「올가·코르프트」도 신화 속의 영웅이 되고 여신이 된다.
아닌게 아니라 잘못하다간 「쇼비니스트」운운의 「오해」도 받게됐다. 물론 중공이 소련을 갈겨대는 「쇼비니즘」의 비난은 『큰 나라라고 해서 제멋대로 힘을 뒤흔들려한다』는, 이를테면 그의 극적, 공격적 측면을 두고 하는 얘기다. 진부는 모른다고 해둬도 좋다.
그러나 이렇게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소련 사람들의 최고=「콤플렉스」나 대국 의식이란 기실 제공시대부터 「러시아」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혀온 대 서구 열등의식과 표리하는 소극적, 방위적인 것이라고. 하기야 둘 다인지도, 둘 다 아닌지도 단언할 도리가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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