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한·호 결전의 순간을 앞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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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호 2차전의 결전을 하루 앞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나가 이번 서울에서의 2차전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이겨야만 할 입장이니 요즈음의 내 잠자리가 편할리 없다.
더군다나 축구표의 예매 때문에 한차례의 큰 소동을 치르고 있는 터이니 그 여파가 혹시나 한국의 승부에 관련이 되어 말썽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까지 생각하면 두려운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1차전 때와 비교하면 우리에게 특별히 불리한 점은 없다. 1차전 때 부상을 입었던 박이천과 유기흥이 지금은 완쾌된 입장이고 기후나 음식·응원 등이 모두 우리 것이니『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축구「팬」이나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는 터이므로 내자신의 입장만이 어려워져갈 뿐이다.
그런데다가 한국이「월드·컵」본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번 기회밖에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그 책임감이 늘어만 가고 있다.
한국은 내가 현역이었던 1954년「스위스」의「월드·컵」대회 때 예선전을 치르지 않고 바로 본 대회에 나갔었다.
그때만 해도 2차전 직후가 되어「스포츠」계에 각국이 신경을 쓰지 못하던 때인지라 한국이 쉽게 본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후의「월드·컵」예선전은 치열하기만 해져 한국이 속한「아시아」·대양주에서 본 대회에 나가기란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워졌고 이 어려움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심해지리라고 본다.
한·호전을 앞두고 대표「팀」안에서는 선수들의 이탈 등 자중지란이 없지 않았다. 모두가 나의 인덕이 없고 지도력이 빈약해서 초래된 결과겠지만 그 때의 사건으로 인해서 지금의 선수단이 더 단결하고 순수해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10일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을 맹세했다.
어느 누구도 개인의 공명심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해 운동장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울 것을 다짐한 것이다.
승패는 두고볼 일이지만 우리선수단은 힘껏 싸우리라고 본다. 물론 그 과정에는 기량이 모자라 실수하는 예도 있겠지만 선전 감투할 것을 약속해도 좋다.
다만 최선을 다해도 만족할 결과를 못 가져올 때 국민들은 따뜻이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 깊은 아량을 베풀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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