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할머니」국영옥씨 서울로 이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고추장 할머니라 불리는 국영옥씨(58·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274)가 고장을 떠나 이달 중순 서울로 이사를 가게되어 순창고추장의 명맥이 사실상 끊어지게 됐다.
순창고추장은 예부터 입안을 감치는 특유한 맛 때문에 아직도 찾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서 자리잡은 아들을 따라 가는 국씨는 옛맛 대로 고추장을 담가온 마지막 솜씨로 이 고장에서 40여년 동안 비법을 이어왔었다 한다.
최근까지 순창고추장의 맛내기에 4대 가문이 있었다.
남자로는 조동훈씨(56) 혼자였고, 신씨 부인(72)·김씨 부인·국씨 등이 순창고추장의 명맥을 이으며 솜씨를 겨뤘다.
그러나 신씨 부인은 나이 들어 손을 뗀지 오래됐고 김씨 부인은 3년 전 사망했다.
조씨 또한 작년여름 서울로 이사갔다.
국씨가 고추장 솜씨를 처음 익히기 시작한 것은 처녀나이 18세 때였다고 했다.
『순창색시가 시집가서 고추장맛이 없으면 소박맞는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국씨는 메주 뜨기부터 익혔다.
이때부터 찹쌀 반죽·고추 고르기·체 거르기 익히기를 3년. 21세 때 처음으로 손수 고추장 한 동이를 담갔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배운 솜씨의 맛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국씨는 지금까지 40년 동안 그 솜씨 그대로 이어온 것이다.
예부터 순창고추장은 맛 중에 손꼽혀왔다 .손가락으로 한번 찍어 밥한 그릇을 다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내려왔다.
순창고추장은 이조초기부터 그 맛을 떨쳐 궁중주방으로 많이 보내진 것으로 전해 오고있다.
특히 순창고추장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 말엽쯤 당시 순창갑부 김영무씨의 부인 노씨(작고)가 상품으로 각지에 내 팔면서부터였다.
국씨가 1년에 담그는 양은 평균 찹쌀 2가마분. 서울·부산 등지 기호가들이 매년 일정량을 가져가 가용보다 더 담갔다.
값은 밥 주발 한 그릇에 5백원. 그 중에 1백원정도 남는다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맛과 멋』(중앙일보 72년12월12일자)으로 순창고추장이 소개되자 국씨에게는 전국각지에서 하루평균 10여 통의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함께 장사하자는 편지도 있었으나 담그는 비법을 알려 달라는 가정주부의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또 편지의 사연 가운데는 국씨를 울린 것도 있었다.
대구의 한 소녀는 『1년째 병석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입맛을 돌이켜 드리고 싶다』며 돈5백원을 송금해왔다.
국씨는 효심에 감격, 「코피」병에 고추장을 우송해주었다.
순창면은 이 지방 명물 고추장을 대량생산. 기업화하려고 71년도에 고추장「센터」를 냈으나 실패했다 .손으로 담근 맛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가 고추장을 담근다해도 순창고추장의 맛이 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국씨는 명맥을 이어줄 사람이 없이 떠나게돼 서운한 눈치였다. 【순창=호남지방 특별취재반 김경철·고정웅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