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공연 『성웅 이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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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착공 6년만에 26억원을 투입한 「메머드」국립극장이 남산기슭에 섰다. 정부가 뻗어 가는 국력을 과시하는 상징으로서 세운 이 호화로운 문화「센터」는 앞으로 한국인의 무대예술을 총체적으로 전시할 장소가 될 것이다.
외관의 위용이 대단하면 할수록 그 내용물이 초라해질 위험성이 많아진다. 이러한 위험을 안고 첫「테이프」를 끊은 『성웅 이순신』은 우리가 새로운 국립극장의 공연으로서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세계적 수준의 연극으로 치닫기 위해서 앞으로 얼마나 발버둥쳐야만 되겠는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4백평이 넘는 넓은 무대를 요리할 수 있는 연출자가 필요하다. 다음에는 이 공간을 적절히 메워주고 극에 심도와 「멀티·레벨」을 주고 거기에 극적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장치가와 조명가가 필요하다. 우수한 시설과 장비는 그만큼 정교하고 숙련된 기술을 요할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수한 작가와 배우의 출현은 정말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에게 이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사람이다. 이순신이 서인 등의 탄핵을 받는 어전 회의로부터 그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이야기를 2부15장으로 나누어 그려간 작자 이재현의 「스트레이트」한 전개와 이순신의 위대성을 민중과의 관계에서 반영시키고자한 연출자 허규의 서민적 의도는 일단 이 극을 당연한 궤도에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성웅의 극화에는 두개의 위험한 함정이 있다. 하나는 신격화요, 또 하나는 세속화 내지 희화화다. 전자의 경우 그 인물이 한국 거리의 동상처럼 대중으로부터 차갑게 또는 고압적으로 유리되어 버리며 후자의 경우 그 위인이 지닌 외경감 내지 신비감이 상실된다. 대중으로부터 초연하지 않으면서 높은 인격적 성품과 마력을 지니는 인물, 그가 곧 극중의 성인이라면 이번 공연의 이순신(장민호 분)은 높은 단 위에서는 내려왔지만 그와 비례하여야 할 인간적 감동을 주는데는 약했다. 그것은 특히 이순신을 정작 위인으로 만들어야할 주위의 인물들을 살리지 못했고 이순신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같이할 민중을 「다이너믹」하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백명 가까운 배역을 갖고도 객석을 압도하지 못했던 것은 무대(연출·조명·장치·음악)가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단순화를 면치 못했고 극의 「템포」가 느리고 단절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는데 후자의 원인은 주로 회전무대 때문이었다.
극장의 음향설계에 원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기자의 일부가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재고해 볼 문제다.
이제 한국 연극계는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했다. 국립극장의 간판 격인 연극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연극 전문가의 중지를 모아야겠고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야 되겠다. 그보다 앞서 한국의 연극인들은 이 새로운 극장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 인색하지 말며 또한 이를 받는 측에서는 그러한 사상을 존중해주어야 되겠다. 【한상철<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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