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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섭일 특파원, 골란고원 전장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중동 전 취재를 위해 「베이루트」에 급파된 주섭일 특파원은 14일 「레바논」군의 비밀「루트」를 이용, 중동 전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인 「골란」고원의 전투 현장을 다녀왔다. 다음 글은 지축을 흔드는 포격과 소제 「샘·미사일」이 「이스라엘」의 「팬텀」기와 겨루는 광경, 그리고 「팔레스타인·게릴라」지도자 「야시르·아라파트」와의 우연한 노상 조우 등이 담긴 생생한 종군기다. 주 특파원은 중동 전 개시 후 전장에 들어선 첫 한국기자이다.
「레바논」군의 공보책임자 「자템」씨로부터 13일 하오 『어떤 일이 있어도 「레바논」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다음 「골란」고원취재를 위한 통행증을 받았다. 안내를 맡을 「아랍」인 한 명과 특별수상을 준다는 조건으로 「택시」를 전세 내어 14일 상오 11시 「레바논」「시리아」「요르단」의 3개국이 맞닿은 「골란」고원의 국경도시 「키엠」을 향해 떠났다.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 자갈밭과 검붉은 바위산을 바라보며 남으로 약1시간 가량 달렸을 때 안내인이 어깨를 툭 치며 턱 끝으로 맞은편을 가리킨다.
다섯 대의 자동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오는데 안내인이 『세 번째의 「지프」를 자세히 보라』고 일러준다.
수염 투성이의 얼굴에 이글거리는 눈, 「카키」색 군 모에 계급장 없는 군복-.
어디선가 많이 본 「거물」이라고 생각한 순간 안내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아랍·게릴라」의 영웅 「야시르·아라파트」다.』좀더 자세히 보려고 했으나 자동차 행렬은 이미 뽀얀 먼지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강원도 진부령 길은 탄탄대로라고 해야할 만큼 구절양장의 꼬불길을 기어간 끝에 마침내 「키엠」마을에 당도했다.
1km쯤 떨어진 능선에서 끊임없이 흙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때마다 귀를 찢는 듯한 포성이 뒤따른다.
한데 이상한 노릇이다. 포연과 포성,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 쓰러져갈 토연을 바라보면서도 도시 최전선에 서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다.
본 특파원뿐만 아니라 「키엠」마을의 청년들도 그러한 듯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토연 속에 반짝 빛나는 불빛과 포격이 들릴 때까지의 1, 2초를 재미있는 듯이 재고있었다.
갑자기 『팬텀, 팬텀』하는 소리가 들린다. 청년들이 가리키는 손끝에 두 줄기의 하얀 비행 운이 보이고 흰 선의 끄트머리에 은백색으로 반짝이는 조각이 있다.
두 줄기의 하얀 비행운은 급격히 포물선을 그리며 바로 눈앞의 흙먼지 이는 언덕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와 동시에 언덕 이편에서 세 줄기의 붉은 줄이 주욱 그어진다. 「샘·미사일」3기가 동시에 발사된 것이었다.
하얀 비행운 두 줄기가 갑자기 뚝 끊기고 3개의 「샘·미사일」은 그 지점에서 폭죽처럼 아름다운 섬광을 내었다.
「키엠」마을 청년들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본 특파원도 조종사의 낙하산이나마 찾으려고 안타깝게 응시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섬광이 꺼진 바로 그곳에서 초음속 돌파 때의 굉음이 터지고 2대의 「팬텀」기는 은백색을 반짝이며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본 특파원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을 편들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생명이 무사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샘·미사일」은 「팬텀」기 「엔진」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따라 추격하다가 비행운이 끝나는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폭팔, 「샘·미사일」의 정밀성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이를 피해나간 조종사들 기술에는 실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가 하오 3시10분. 계곡을 건너 고지로 향하려하자 이 마을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타타타」총소리를 흉내내며 죽는다고 만류하는 것이었다.
고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검게 그을은 물체가 눈에 띄었는데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시리아」의 탱크며, 그 속엔 아직도 시체들이 그대로 있다는 설명이었다.
마을 앞 계곡에는 흙을 칠해 위장한 장갑차와 군인들이 이날 밤의 전투준비인 듯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때 「이스라엘」「헬」기 2대가 정찰비행을 하고 남으로 날아갔다.
이 마을 청년 한사람이 3일 전 떨어진 「팬텀」기 잔해를 구경하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이 「이스라엘」기는 이 마을 민가에 떨어져 9명의 주민이 사망했는데 2명의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내렸으나 모두 팔다리가 부러져 중상이었고 곧 경찰이 잡아갔다는 설명이다.
한 민가 창고에 있는 불탄 쇠붙이에는 번호가 325816A513, 그리고 「캘리포니아」US라는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때 한 중년의 사나이가 조그만 상자를 보여줬는데 조종사가 추락, 생포될 때 갖고있던 약상자였다. 그 뚜껑 안쪽에 「모르핀」0·03「앰풀」「태블리트」 등 6개의 약 명이 영어와 「이스라엘」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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