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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좌표 3~10m 오차 … 드론 택배 시대, 아직은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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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저스가 “4~5년 내 드론(drone)을 이용해 상품을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드론은 수컷 꿀벌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즘은 무인항공기(UAV)의 별명으로 더 널리 쓰인다. 베저스에 이어 일주일 뒤엔 독일 국제특송업체 DHL이 드론으로 의약품 배달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공상과학소설(SF) 같은 ‘드론 택배’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걸까.

한 남자가 태블릿PC로 아마존에서 상품을 주문한다. ‘30분 이내 배달’ 옵션을 선택하자,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주문한 상품이 드론에 실린다. 스스로 고객의 집을 찾아간 드론은 현관 계단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마존이 공개한 드론 배달 서비스(아마존 프라임 에어) 홍보 동영상 내용이다. 베저스는 이 드론이 “최대 5파운드(약 2.3㎏)의 짐을 싣고 10마일(약 16㎞) 정도 거리를 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드론의 자세한 사양은 공개하지 않았다. 외형상 여덟 개의 프로펠러를 단 헬리콥터형(octocopter)이란 점만 확인됐다. 잘 알려진 군사용 드론인 프레데터(MQ-1)나 리퍼(MQ-9)처럼 지상에서 사람이 드론을 조종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모든 비행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동영상이 공개되자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뉴스 블로그 등에는 “기술적으로 몇 년 내 실현되기는 힘들 것”이란 회의적인 반응이 올라왔다.

# ‘현관 앞 배달’ 쉽지 않아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과 독일의 글로벌 특송업체 DHL이 최근 소형 드론을 이용해 물건을 배달하는 ‘드론 택배’ 계획을 선보였다. 하지만 실용화까지는 아직 기술적 난제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12월 초 독일 본의 DHL 본사 앞에서 시험 비행에 성공한 드론 ‘파케트콥터’. [중앙포토]

자동비행 드론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목적지를 찾아간다. 이 때문에 일반 택배처럼 집주소만 알아선 배달이 불가능하다. 각 집의 정확한 GPS 좌표가 필요하다. 더구나 GPS는 3개의 인공위성이 보내는 전파를 받아 삼변(三邊) 측량법으로 지구상 위치를 계산한다. 위성의 위치에 따라 3~10m 정도 오차가 날 수 있다. 드론을 유도할 별도의 마커(marker)를 설치하지 않는 한 동영상에서처럼 현관 앞에 정확히 물건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좁은 통로를 사이에 놓고 위·아래·좌·우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라면 자칫 ‘배달 사고’가 속출할 수도 있다.

 DHL의 경우 시험 비행 때 한적한 라인 강가에서 파케트콥터(Paketkopter·독일어로 ‘소포 헬리콥터’라는 뜻)를 띄워 약 1㎞ 떨어진 강 건너편 잔디밭에 착륙시켰다. “GPS를 이용한 자동비행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테스트 땐 지상에서 원격으로 드론을 조종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걸림돌은 또 있다. 드론은 비행 도중 수많은 장애물과 마주치게 된다. 크고 작은 건물과 나무·전신주·전깃줄 등이다. 이들을 피하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특히 좁은 장소에 장애물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기술적으로 장애물 회피 비행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고해상도 카메라를 달고 검은색 전깃줄과 검은 아스팔트 배경을 구분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탑재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자면 덩치가 커지고 제작비가 올라간다. 당연히 배송 비용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일부 인터넷 업체는 미국 내 대도시에 한해 이미 세 시간 이내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상품을 조금 더 일찍 받자고 비싼 돈을 내고 드론 배송을 택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아마존이 공개한 홍보 동영상에 등장한 드론 모습. [중앙포토]

 해킹의 위험도 있다. 아마존의 동영상이 공개된 뒤 영국의 한 유명 해커는 자신이 드론을 해킹하는 데 성공했다고 공개했다. 대상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 무선인터넷(WiFi)으로 조종하는 패롯사의 AR드론이다. 주로 카메라를 달아 항공 영상을 촬영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는 소형 기종이다. 하지만 해커는 컴퓨터와 WiFi 어댑터 2개,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해 손쉽게 이 드론의 통신망을 뚫었다. 먼저 WiFi 고유 식별정보(MAC 어드레스)를 이용해 주위를 비행 중인 드론을 찾아냈다. 이어 대량의 데이터 폭탄을 보내 원주인과의 교신을 끊는 동시에 자신이 진짜 주인인 것처럼 명령을 내렸다. 드론은 곧 해커의 손에 들어갔고, 다시 다른 드론을 해킹하는 매개로 쓰였다. AR드론은 비암호화된 통신 채널을 사용한다. 아마존이라면 더욱 강력한 보안체계를 갖춘 드론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해킹으로부터 100% 안전한 기술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드론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존·DHL의 드론은 모두 헬리콥터형이다. 3㎏ 안팎의 짐을 싣고 30분 남짓 날아가기 위해선 커다란 모터와 프로펠러가 필요하다. 자칫 고장 나 인구밀집지역에 추락한다면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국산 틸트로터(tilt rotor·프로펠러 방향을 바꿔가며 비행하는 드론) ‘스마트’ 개발을 주도한 구삼옥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드론을 상업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절대 고장 날 염려가 없고, 행여 고장 나더라도 안전하게 비상착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연방항공청(FAA)도 이런 이유로 상업용 드론의 운용 허가를 미루고 있다. 아마존의 동영상도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 제도 정비 서둘러야

상업용 드론의 운용 기준을 마련하려면 먼저 인증기를 만들어 실제환경에서 여러 차례 시험비행을 해봐야 한다. 미 FAA는 최근 네바다주, 뉴욕주 그리피스 국제공항, 알라스카대 등 6곳을 이런 시험비행 장소로 지정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제자리 걸음 중이다. 한국은 2002년 처음 군단급 정찰용 드론(송골매)을 실전 배치했다. 민간용으로는 해안·산불 등 감시용 드론(KUS-7), 농업용 무인헬기(Remo H-100) 등이 만들어졌다. 항우연의 틸트로터를 60% 크기로 축소한 실용화 모델(TR-60)도 개발 중이다.

 하지만 현재 항공법에는 드론의 구체적 운용 규정이 없다. 무인항공기에 대한 정의(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원격·자동으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와 비행 허가에 관련된 일부 조항이 있을 뿐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011~2012년 KAIST에 ‘상업용 민간 무인항공기 보급기반 구축’ 기획연구를 맡겼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지만 다른 현안들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국제 시장조사기관인 틸(Teal) 그룹은 세계 무인기 시장이 2020년에는 지금의 두 배 이상인 103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는 군용기가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지만 2020년 이후에는 민간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심현철 교수는 “무인기는 다른 항공우주 분야에 비해 한국과 외국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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