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개헌 해야" 서청원 "무슨 개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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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청원(左), 이재오(右)

새누리당에서 박근혜계의 핵심 중진인 서청원(7선) 의원과 대표적 비주류 인사인 이재오(5선) 의원이 개헌 문제를 놓고 맞붙었다. 8일 오전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이 의원이다. 이 의원은 “연초 국민 여론조사에서 75%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며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이 소통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불통”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대통령께서 개헌 문제는 블랙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논의 주체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논의를 어떻게 운반하느냐에 따라 블랙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새누리당은 대다수 국민들이 요구하는, 여야 의원 100여 명이 요구한 개헌특위를 금년에 국회에서 구성해야 된다”고 요구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에 당선되면 개헌논의를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돈이 드는 공약은 안 해도 국민들이 이해를 하지만 돈이 안 드는 공약까지 안 하면 불신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발언이 이어지는 도중에 서 의원은 주변에 들릴 정도로 “무슨 개헌이야”라고 중얼거리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잠시 뒤 발언 순서가 오자 서 의원은 “이명박정권에서 김형오 국회의장 산하에 개헌특위를 만들었을 때 모든 언론이 이재오 의원을 정권의 2인자로 얘기했을 만큼 힘이 있었다. 그런데도 (개헌을) 추진하지 못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서 의원은 평소보다 강한 톤으로 “지금은 개헌보다도 국민들이 먹고사는 경제를 살리는 데 우선 과제를 둬야 한다”며 “박근혜정부가 1년 동안 국정원 댓글 같은 것에 발목이 잡혀서 한 치도 나가지 못했다. 개헌 문제보단 남북통일, 법 바로 세우기,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문제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의 공개 반박이 이어지는 동안 이 의원은 입을 꽉 다물고 서 의원을 쳐다봤다. 이후 비공개 회의 때도 서 의원은 이 의원에게 “어디 개헌이 쉽나. MB 때 해봐서 알지 않나. 지금은 경제활성화에 매진하고 그 다음에 개헌을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고, 이에 이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서 의원과 이 의원은 원래 중앙대 동문으로 평소 막역한 관계였다. 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사무총장을 할 때 대학 후배인 이 의원을 많이 챙겼다. 1998년 서 의원이 한나라당 총재 경선에 나섰을 때 이 의원은 캠프에 참여해 돕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의 핵심이던 이 의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 의원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면서 관계에 금이 갔다. 두 사람은 양 캠프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면서 수시로 충돌했고, 경선 이후에도 양 계파를 대표해 계속 신경전을 벌였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이 의원은 정권의 실세로 부상했지만 서 의원은 친박연대 공천헌금 사건으로 구속됐다.

김정하·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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