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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분쟁-전면전으로 확대될까|소의 예방 기습전 가능성과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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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누구나가 탐내는 고깃덩이지만 너무나 질겨서 아직까지 먹혀본 적이 없는 나라』 (십전 대회에서의 주은래 발언)를 자처하는 중공이 최근 들어 소련의 「기습 전」 가능성에 진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십전 대회에서 왕홍문이 정식으로 침략 전에의 대비를 호소한데 이어 지난 1일의 중공 정부 수립 24주년을 기념한 인민일보·홍기·해방군보 등 3대지 공동 사설도 이 문제를 거론했다. 58년 이념 논쟁으로 시작된 중·소 분쟁이 소련의 예방 기습 전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중공류의 엄살만도 아닌 것 같다. 최근 외지에 실린 중·소 전면전의 가능성과 배경에 대한 분석 기사를 소개하다. 【편집자 주】
소련의 대중공 의구심에 대해 「모스크바」의 한 「아카데미」 회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미국이 미국 서남부의 대부분을 내놓으라고 하는 8억 인구의 「멕시코」인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조만간에 「뉴요크」와 「워싱턴」을 핵으로 강타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소련이 이와 같은 두려움 때문에 예방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쑥덕공론은 최근 들어 부쩍 열기를 띠고 있다.
특히 얼마전 외몽고가 대 중공 비난을 격화시킨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

<소, 외몽고와 방위 조약>
외몽고의 주장은 중공이 자기네 영토를 침범했다는 것인데 관계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소련이 외몽고와 방위 조약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소련이 이미 중공에 대한 예방 전쟁을 결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외몽고의 중공 비난은 전쟁의 실마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군사 전략가들도 만약 중·소 전이 일어난다면 그 불길은 외몽고에서부터 붙을 것이라고 점쳐 왔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국」이 과연 전면적인 무력 충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그 이유로 내 세운다.

<이념 차이 융화 어려워>
첫째, 양국 공산당의 이념적 차이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융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차이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이 두 사람의 마부에 의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는 결과를 빚고 있다.
예컨대 사회주의 혁명 단계에서의 계급 및 연속 혁명의 인식 문제에 대해 북한과 「알바니아」가 이미 모택동 사상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 혁명 전략에서도 마찬가지의 분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대국주의의 「파워·폴리틱스」에 익숙해버린 소련으로서는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반드시 솟아났을 것이라는 풀이다.
둘째. 중공의 방대한 영토 반환 요구가 이론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소련의 최대 약점인 소수 민족 문제에 불을 지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소련은 1920년 「카라한」 선언을 통해 『제정 「러시아」가 불평등 조약으로 강탈한 일체의 영토를 반환』키로 약속했었다.
만약 이 약속을 액면 그대로 지키자면 소련은 약 2백50만평방km의 땅을 중공에 들려줘야 하는데, 중공은 실제로 이의 대부분을 협상의 의제로 삼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중공은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소수 민족들을 상대로 반소 선전은 격화시킴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중공, 반소 선전 열 올려>
그런데 문제는 소련이 모든 소수 민족에 독립을 허용할 경우, 「슬라브」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은 「프랑스」 정도 밖에 안된다는데 있다.
그리고 중공에 옛 영토를 돌려준다면 논리적으로는 「폴란드」「루마니아」 등으로부터 빼앗은 영토와 「발틱」 3국까지도 내놓아야 한다.
세째, 중공에 대한 견제가 장기화하면 소련의 대 「유럽」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슬라브」족의 전통적인 「게르만」세가 구주 현상 유지에 동의하고 있으나, 자칫 대 중공 견제 때문에 소련의 힘이 균형을 잃게되면 소련은 양면전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위력 큰 중공제 미사일>
따라서 중공 문제는 중공이 더 이상 강해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풀이다.
「런던」의 전략 문제 연구소는 중·소 전의 최대 위험 시기가 앞으로 12∼18개월 사이라고 진단했다. 이 시기 안에 전단을 연다면 소련은 큰 피해 없이 북경에다가 친소 정권을 세울 수 있겠지만 이 기간을 놓치면 승패 불명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
중공은 이미 상당수의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련의 「유럽」쪽 지역을 강타할 수 있는 사정 거리 3천5백「마일」의 새「미사일」도 생산 단계에 들어갔다. 이 「미사일」이 선전용으로 배치되면 소련은 엄청난, 경우에 따라서는 파멸적인 손해를 각오해야한다.

<황화의 악몽에 시달려>
「모스크바」의 외교관들은 소련이 얼마나 「황화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소련인들 스스로도 이것을 숨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련은 지난 4년 사이에 중·소 국경 지대의 병력을 15사단에서 45개 사단으로 증강했다. 이것은 소련의 총 병력 1백64개 사단의 4분의 1이 넘는다.
소련은 또한 전 공군력의 4분의1이 넘는 1천여대의 군용기를 이 지역에 배치했으며 핵탄두 「미사일」도 상당수 투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경이 지하 25「피트」의 「터널」망을 구축하고 『핵전 대비』를 외치는 것은 결코 피해 망상만은 아닌 셈이다.

<무력 증강에 불안 가중>
중공 역시 지난 3년 사이에 국경 병력을 32개 사단에서 45개 사단으로 늘렸다.
만약의 경우 대량 보복의 수단으로 핵 「미사일」의 생산 및 기술 향상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중공은 현재 사정 거리 2천3백 「마일」의 「미사일」 15∼20기, 1천2백 「마일」짜리 약15기를 조작중이며 이들은 모두 중·소 국경 지대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장거리 핵 폭격기인 TU-16의 생산에도 급「피치」를 올려 이미 1백50대가 활동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이와 같은 무장력의 경쟁적 증강은 그대로 불안의 증대와 연결된다. 그리고 소련은 그에 정비례하여 예방 전에의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소련의 예방 전 여부가 순전히 두 나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미국이나 「나토」 국가의 호의적 중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도저히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 분쟁 일지>
▲56년2월24일=「흐루시초프」, 「스탈린」 격하 연설.
▲동년 10월1일=주은래, 반「스탈린」정책을 반박.
▲58년12월1일=「흐」, 중공의 인민 공사 비판.
▲59년6월20일=「흐」, 중·소 국방 기술 협정 파기 .
▲60년6월21일=「흐」,「부카레스트」 공당 회의서 중공 비난.
▲60년7월16일=「흐」, 중공 안 소 기술자들 1개월 내 철수 지시. 국경 분쟁 표면화.
▲62년4월=신강성의 수만 중공인, 소로 망명.
▲62년10월∼12월=「흐」의 「쿠바」 위기 양보로 대 논쟁.
▲63년6월27일=소, 중공 대사관원 5명 퇴거 요구.
▲65년3월1일=「모스크바」 세계 공당 대회에 중공, 「알바니아」와 함께 불참.
▲67년1월14일=「코시긴」, 모택동을 비난.
▲67년∼69년=홍위병 외교로, 사실상 국교 단절
▲69년3월2일=진보도 사건, 사상자 80여명.
▲동년 7월8일=팔분도 사건. 사상자 50여명.
▲69년9월11일=「코시긴」·주은래 북경 공항 회담.
▲69년10월20일=중·소 국경 회담.
▲73년8월24일=십전 대회에서 주·왕, 소 사회 제국주의 비난, 전쟁 가능성 경고.
▲73년9월=외몽고, 중공 영토 침범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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