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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 그 의의와 본사주최 특별 좌담회|동·서 의학의 접합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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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닉슨」의 중공방문을 계기로 구미를 휩쓴 침술「붐」의 상승기류를 타고 지금껏「블랙·매직」(Black magic)으로만 여겨져 온 동양의학이 구미의료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것은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데 공헌한 서양의학이 최근 부딪치고 있는 장벽의 돌파구로서 동양의학에 접근하고 있는 경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과연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접합은 가능한 것일까.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의 좌담회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좌담회>동양의학은 종합적 관찰방법 사용|서양의 분석적 방법과 융화 바람직|동양문화의 이해 병행돼야|한국침술 수준 높으나 양 의학기초 전무|해부학·병리학·생리학 등의 지식도 필요
사회=침술마취와 약물마취의 차이점이라면 어떤 점을 들 수 있겠습니까? 또 이들 양자를 병용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요.
워슬리(영)=중공의 예를 든다면 침술마취의 실패율이 15%라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서양의학의 약물마취가 보다 안전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약물로 마취한 경우에는 몇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기는 합니다만….
피네(불)=현재는 침술에 의한 마취가 단순히 호기심에서 행해지는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10년 동안 동물과 인체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침술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팔랑카(필리핀)=작년에 나는 4개월 동안 중공을 방문하면서 중공 침술의 현황을 살펴보고 또 직접 침술마취 실습도 해보았는데 침술로 전신마취를 걸어 갑상선을 비롯해서 난소·자궁·담낭 등을 완전히 떼 내는 수술을 지켜보고 의사로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본국(필리핀)에 돌아가서 12「케이스」의 수술환자들에게 침술마취를 시행해 본 결과 출혈이 심한 개복수술에는 침술마취가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방광석을 제거한다든지 충수돌기(맹장)를 떼는 수술에는 재래식 약물마취와 침술마취를 같이 쓰면 더욱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르타사비(스웨덴)=나는 여러 가지 마취술 가운데 침술마취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스웨덴」의사들의 경험으로는 침술마취가 약물마취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마취효과가 보다 지속적이며 부작용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이번 침구학술대회를 통해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접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해 보셨는지요. 만일 가능하다면 그 이유와 방법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네(불)=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보다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마땅히 융화되어야 하겠지요.
동·서 의학이 융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은 인간과 질병과의 관계를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관찰하지만 동양의학은 인체를 작은 우주로 보는 종합적인 접근방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좀더 동양적인 관찰방법을 깊이연구하고 동양에서는 서양의 분석적 방법을 익히는 태도가 바람직스럽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느낀 점은 한국이 비록 침술수준은 높다고 할지라도 이를 시술하는 한의사들이 해부학·병리학·생리학·생화학 등 서양의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학의 기초적인 개념과 지식이 없이는 동·서 의학의 융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봐야겠지요.
예니(미)=미국의 경우「닉슨」중공방문 후 우후죽순처럼 침술 가들이 쏟아져 나와 의료계에서는 퍽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침술 가를 인정하는 곳은「네바다」주 뿐입니다만 주에 따라서는 성행하는 침술을 어떻게 제재할 도리가 없다고 방관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든 미국 의료계의 침술연구는 대단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동통을 없애는데 침이 어느 약물보다 우수한 효능을 발휘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요법으로서 침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회=내용이야 어떻든 침술이 세계적으로「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침술의 전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르단(스페인)=「스페인」에선 1850년에 이미 침술이 보급되었는데 침술의 역사로 보아「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나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침술수준이 높은데 놀랐습니다.
서로 중점적으로 교류한다면 우리의 침술은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피네(불)=동양의 문화적인 문맥 속에서 침술을 이해하고 보급해야 올바른 침술의 보급이 가능하다는 점과 무턱대고 침술가를 양산하는 것보다 침술의 질적인 수준을 높여야만 침술의 전망이 밝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창빈(한국)=침술의 올바른 인식과 보급을 위해서 국제적인 교육기구의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바쁘신데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회의 의의>규약제정, 2년마다 개최합의|3백65개 경혈 번호 한국안에 따르기로|한국침술에 과학적 실험의 뒷받침 시급
대한한의사협회와 경희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제3차 세계침구 학술대회가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25개국의 대표 4백 여명과 국내 의료계 인사 5백 여명 총 9백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침구술에 대한 72편(국내 55편, 외국 17편)의 논문과 실기발표가 있었다.
첫날 열린 각국 대표자 회의에서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대회 규약이 제정되었고 4년마다 열릴 대회를 2년마다 열기로 합의, 차기 75년도 대회는 미국에서 개최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현재 알려진 3백65개의 경혈에 대해서는 그 번호를 국제적으로 통일하기로 하되, 한국에서 내놓은 안을 그대로 따르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경혈의 국제번호를 한국안대로 따르기로 한다는 각국 대표자회의의 결정은 이번 대회의 큰 수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 세계침술대회는 한방과 현대의학의 미묘한 관계라든지 한방의 이해방법 및 접근방법, 그리고 하나의 치료법으로서의 침구 등 우리 의료계가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숱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우리나라 한의사들이 발표한 논문들은 이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 학자들(대부분이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이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을 지라도 학술논문으로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가령 노정우 교수(경희대 한방과)의『삼초를 주로 한 명문심포 연구』, 권정수씨의『색맹의 침구치료』, 이병신씨의『태극침법』등 몇 몇 논문들은 흥미와 관심을 끌었으나 외국 학자들의 분석적인 사고의 틀을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한 인상이 짙었다.
그래서「스웨덴」대표「모르타사비」박사는 침술을 학문으로서 강조하려면 보다 과학적인 실험과 분석적인 연구를 통해 체계화시키는 작업을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나라의 한의사와는 달리 외국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의 내용은 의학적(해부·생리·병리·생화학적)인 실험결과와「데이터」를 제시하며 침술의 치험 예를 다루고 있어 퍽 대조적이었다.
우리의 침술이「믿기 어려운 신비의 대상」이라는 재래의 통념을 털어 버리고 질병을 퇴치하는 하나의 요법으로 인정이 되려면 한방에 대한 접근방법에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경희대 경희한의원에서는 26일 성공리에 실시된 침술마취에 의한 개복수술과 발치, 그리고「금립침매몰 요법」을 직접 견학한 외국학자들은『한국의 침술수준은 으뜸』이라고 찬사를 보내고『세계에서 유일한 한방대학과 병원을 갖춘 경희대학교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한방대학에서 많은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세계의 의료인들이 동양의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의료계에서도 한방이 단순히 우리들 조상의 원시적인 질병퇴치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도외시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한방을 이해하고 연구해야 할 단계에 이르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립동양의학연구소 같은 기구가 설치되어서 한방에 대한 본초·약물·침구 등의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겠다. <김영치 기자>
때 9월27일 상오11시∼하오1시
장소 본사 회의실
참석자 「J·R·워슬리」(영국), 「C·피네」(불), 「C·위게」(불), 「리처드·예니」(미), 「윌리엄·L·러키」(미), 「R·카스탄·사라」(스페인), 「라그·조르단」(스페인), 「올레·달」(덴마크), 「아그바르·모르타사비」(스웨덴), 「프레데리코·J·스페스」(브라질), 「마트·K·휜텐」(서독), 「리리아·M·팔랑카」(필리핀), 「파불로·타우빈」(아르헨티나), 이창빈(한국), 임덕성(한국)
사회 본사 김영치 과학부 차장
기록 권순용·이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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