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 공포] 정국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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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까지 진통을 보인 대북 송금 특검법안을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공포했다. 이로 인해 정국의 예측성과 투명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盧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협조를 정국 운영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렇다. 盧대통령은 1백51석인 한나라당과는 그의 말대로 '신뢰를 존중하는 관계'를 쌓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윈윈 게임을 했다"며 '상생의 정치'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盧대통령의 이 같은 결심은 할 일 많은 집권 초기 대통령임에도 소수 정파라는 현실을 인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거대 야당과의 파트너십을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북핵.한미동맹.경제침체와 개혁 인사 후의 정부 장악 등에 차질이 생긴다. 한나라당이 거리로 뛰쳐나가는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盧대통령은 사면초가의 형국으로 떨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盧대통령은 정국 안정을 위해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과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구주류의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주당 구주류는 분당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비쳐왔다.

이와 별도로 민주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盧대통령으로서는 DJ와 결별하게 될 경우 자기부정의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특검법을 원안대로 일단 수용한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盧대통령은 DJ 측을 의식해 여야 협상을 종용함으로써 '공포 후 특검법 개정협상'이라는 야당의 양보를 얻어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날 盧대통령의 결정으로 같은 당 출신인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은 깊어질 것 같다.

이는 특검법 수정 논의 과정에서 있었던 盧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예상됐다. 그는 특검법안 수사 과정에서 북측 인사의 실명이 공개되는 사태가 벌어져 남북관계가 경색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금조성 과정 등 국내 수사에선 DJ 측근들을 포함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교동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큰 틀에서 타협 정국의 도래로 한나라당도 한숨 돌리게 됐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한나라당은 정권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구심력이 약한 '대표권한대행 체제'로선 감당하기가 어렵다.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정대철(鄭大哲)대표 등 민주당 신주류의 역할도 작용했다.

따라서 앞으로 정국은 盧대통령.한나라당.민주당 신파 등 3자의 이해가 부분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구주류의 반발이 변수가 되는 상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신구세력의 충돌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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