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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제난국 헤쳐 나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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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연일 바닥을 치는가 하면 무역수지는 적자로 반전되었다.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 침체는 가속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 시장의 춘투(春鬪) 불안에 최근에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에 따른 금융시장의 요동까지 겹치면서 경제 상황을 가일층 어렵게하고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무엇인가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정작 경제 난국을 해결할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다는 데 정책 당국의 고민이 있다.

*** 재정 조기집행도 방법

당면한 거시경제 문제에는 미.이라크 전쟁과 북핵 사태와 같은 비경제적 외생 요인이 크다.

그러나 실은 우리 경제의 산업 구조와 금융시장의 대외 의존성이 커서 오일 쇼크나 외자의 급격한 유출 같은 대외 충격이 생기면 이를 흡수 조정하지 못하는 펀더멘털 구조의 결함에서 오는 정책한계성이 더 문제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기 대책은 재정측면에선 지출확대로 수요를 진작하고, 금융 부문에서는 금리 인상이나 통화량 긴축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기본 처방이다.

그러나 금리정책은 그동안 소비와 투자를 부추기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펴온 결과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재정의 경기 조절 기능도 '균형 재정이 최선'이라는 틀에 박힌 정책 도그마 때문에 과감한 적자 재정 확대가 불가능하게 돼있다.

정부의 대응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거시정책 이슈에 대해 정책 판단을 내려보자.

첫째 금리 수준에 관한 금리 정책 문제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 투자의 이자율 비탄력성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의 수요 진작 효과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금리 정책의 초점은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적정금리 수준을 유지해 금리의 가격 기능을 회복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장단기 금리의 연계 기능을 살리려면 채권 유통 시장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고 정크본드나 자산담보부채권(ABS) 등의 채권 시장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재정 정책의 경기 조절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이 아니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으로 재정 지출의 조기 집행뿐만 아니라 적자 재정 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법인세의 과감한 인하나 주식 배당과세 완화 등을 통해 기업 투자와 주식 투자 유입을 제고해야 한다. 재정 균형의 문제는 중기적으로 균형을 달성하면 족하다.

분배 정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법인세 인하 정책이 주춤하게 된 것은 잘못된 정책 판단이다. 지금은 분배의 형평성보다 경기 회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더욱 급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인하기 위해서도 법인세는 인하되어야 한다.

*** 물가 안정에 힘써야

셋째, 분배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는 분배의 형평성 제고다. 물가 안정은 분배정의 실현이라는 정책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물가가 오르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왜곡돼 기업이나 자산가에게는 인플레 이익이 발생하나 봉급근로자나 무산자의 분배 형평성은 더욱 악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원유가 및 원자재 가의 상승과 과잉 유동성에 따르는 인플레 기대심리 등을 감안할 때 하반기 이후 물가 불안이 염려된다.

정책 당국은 거시경제의 불안과 침체를 막기 위한 단기적인 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는 만큼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인프라 구축과 구조 개혁에 주력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 정책과 노동정책에 대한 새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제주체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에서도 경제 활력과 민생 현안에 대해 여야 공히 협력해 난국을 헤쳐가는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金重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