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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양심과 사명감|「제3회 대한민국 사진전」에 제언한다|김행오<사진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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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언은 듣는 사람만큼이나 하는 사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고언을 해야될 때 하지 못하는 만큼 서로가 더 슬픈 일도 없다. 이것은 서로의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전의 향상과 나아가 한국사단을 위해서 몇 마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부문의 국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진예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하여 우리가 낸 세금의 보조를 받아가며 매년 개최되고있다.
해마다 개최된다는 것은 해를 더할수록 발전과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지 답보 내지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선 올해만 해도 입상작·입선작을 합하여 48점이나 전시되었는데 몇 점을 제외하고는 대형화되고 「칼라」가 늘었을 뿐 내용에 있어서는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하는 쓸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국전이 보는 사람에게 과거의 무의미한 대다수의 군소 전람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전시회가 되고만 것이다.
이 슬픈 현상에 더욱 부채질 한 것은 근20점에 달하는 소위 초대작가·추천작가, 그리고 심사위원 자신들의 출품작들이다. 이분들의 작품이 일반 공모작품보다도 못하다는 것은 그 작품을 보는 국민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이름이 보여주듯 초대작가·추천작가 심사위원이라면 한국사진을 끌고 간다는 최소한의 양심과 사명감은 그의 분신인 작품을 통하여 엿볼 수 있어야겠다는 점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 작품에서 한국사진의 모범을 보고 있다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낼만한 작품이 없었을 경우 아예 출품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기교나 「테크닉」은 주제표현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것이며, 치밀한 계산과 검토 끝에 사용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렌즈」의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나머지 소재로서의 대상의 사실에만 얽매여 버렸다.
따라서 그 소재에서 별개의 영상을 만들어 내고 개성화 된 자기 「이미지」창조 및 승화과정에서의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객관적인 사실만에 집착하고 작가의 의도보다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급급하고 영상에의 주관도입을 오히려 사도시하는 객관주의가 꽤 오래도록 한국사단에 고착되어 있다.
작가의 주체성을 등한시하고 그 사고의 자세보다는 주로 객관적 사실의 기술적 재현의 완성에만 목표를 둔다는 것은 너무도 전진을 모르는 슬픈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의 사진은 말할 것도 없이 기술이 아니고 그 창조성에 달려있다. 사진이 예술일수 있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여 주관(작가의 주체성)과 객관(소재로서의 현실)을 통일하여 파악하는가? 어떻게 영상 속에 작가의 사고 내용을 반영시킬 것인가? 어떻게 하여 외적인 현실과 내적인 현실을 결합시키는가를 생각해야한다. 이러한 창조적 견지에서 사진을 생각하고, 그 방법론에 의욕을 불태워야 할 것이다. 이는 기술을 무시하고 내용만으로 사진을 선택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며, 작가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스스로 존중하자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절대 비연출의 절대「스냅」이라는 「리얼리즘」의 방식과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한 순간이라는 「카르티에·부레송」의 미학이 언제까지 절대시되어야 하는가? 발전을 위해서는 껍질을 벗을 줄 알아야하고 그 껍질을 벗는 아픔이 크면 클수록 발전의 진폭은 더 클 것이다.
이러한 구성방식과 미학을 주축으로 하는 사진의 표현형식을 타파하고 현실과 직접적으로 대결하여 그 충격 속에서 자기자신의 「이미지」를 재창조하고 거기에 현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윌리엄·클라인」이 그랬었고 「부르스·데이비스」가 그랬었고 나양원일고가 그랬었다. 사진의 표현이란 항상 유동적인 것이다. 유동적인 현상에 우리는 언제까지나 고정된 관념에 얽맨 사진의 표현을 생각해야 될 것인가?
인간과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서 복수사진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필연적인 추이라면 국전에 복수사진을 참여 시켜서 안될 것도 없잖은가? 한장 사진을 만든다는 의식 속에는 회화적인 미학사상이 뿌리 박혀 있으며, 잘못하면 소위 「살롱」사진이나, 피상적인 「리얼리즘」의 사진을 만들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국전에는 젊고 실력 있는 사진작가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이 말해서 국전은 그 의의에 있어서나 밀도에 있어서 C씨의 가족사진전이나 J씨의 내용 짙은 개인전보다도 못할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열렸던 서라벌예대의 사진전인 『도시』만도 못하다. 응모 출품작의 수준이 낮다는 구실은 이른바 초대작가·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의 사진으로 보아서는 말할 수 없게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의 사진을 아끼고 한국의 사진이 세계적인 조류에서 영영 뒤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제언을 하고싶다.
지금까지 무의미하고 빈축만사는 추천작가와 초대작가 제도를 없애고, 심사기준을 달리하여 공모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실력 있는 사진작가들이 적극 참여하는 명실공히 한국의 사진을 전진시키는 국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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