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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위기] ③-1 우리나라 식량 전진기지가 된 러시아 연해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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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농장에 설치한 현대자원개발 사일로(곡물 저장 창고) 모습. 이상화 기자

<식량 위기> ③-1 우리나라 식량 전진기지가 된 러시아 연해주

미하일 기릴로비치(65)는 소련 시절 러시아 연해주 북부의 국영농장인 바가틀카 농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바가틀가 농장은 황무지로 방치됐다. 결국 그는 농장 일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엔 다른 일을 하면서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던 2009년 어느 날, 그는 농장장으로 바가틀가 농장 개발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 ‘버려진’ 땅을 개발하려 나선 곳은 러시아 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었다. 그는 “10여 년간 방치된 터라 잡목이 우거질 정도였던 땅을 1000ha의 농장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과거 농장 자리여서 도로나 배수로 등의 시설은 남아있었지만 콩ㆍ옥수수를 키울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2년이 소요됐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연해주 바가틀가 농장에서 미하일 기릴로비치 농장장이 수확하기 전 옥수수를 살펴보고 있다. 이상화 기자

열악한 땅을 개간한 우리 기업은 이지바이오 계열 서울사료의 현지 지주회사 에코호즈다. 이지바이오는 가축 사료ㆍ육가공ㆍ사육 등을 하고 있는 농축산기업이다. 해외의 척박한 땅을 우리나라 식량 전진기지로 만든 사례인 셈이다.

현지인력을 고용해 에코호즈가 연해주에 만든 농장은 바가틀가를 포함해 총 4곳(그리고리예프카, 바가틀카, 항카플러스, 라콥스코예)이다. 이 중엔 바가틀가처럼 재개간한 곳도 있고 운영되고 있는 농장을 인수한 경우도 있다. 4개 농장의 총 면적은 1만5000ha다. 여의도 면적 840ha의 17배다. 이중 9094ha에서 콩ㆍ옥수수ㆍ귀리 등을 경작한다. 한국인력은 6명, 러시아 현지인력은 210여 명이 근무한다. 지난해 3월엔 서울사료가 연해주 농장에서 생산을 시작한 후 수확한 옥수수 3100t을 블라디보스톡항에서 처음으로 평택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는 국내 사료 공장으로 옮겨져 원료 곡물로 쓰였다.

실적도 좋다. 지난해 9월 연해주농업식량국의 주관으로 열린 ‘영농의 날’에 자리한 씨도렌코 세르게이 표트로비치 연해주 부주지사는 개막 연설에서 “올해 많은 비로 식용옥수수 파종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바까뜨리카 농장의 경우는 주목할 정도의 수확성과가 예상된다”며 “성공적인 영농을 위해서는 이런 농장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현대자원개발 러시아 연해주 농장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다. 정교한 영농을 위해선 내비게이션이 달린 트랙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상화 기자

에코호즈처럼 러시아 연해주에 해외농업 개발을 나선 기업은 현대자원개발을 비롯해 11개 기업에 달한다. 11개 기업은 지난해 3만9664ha을 확보해 밀 2487t, 콩 2만2799t, 옥수수 3만2860t을 생산했다. 연해주는 남한의 1.6배 크기다. 1990년엔 약 74만ha가 농경지였으나 현재는 31만ha로 축소돼 있고 땅 가격이 저렴해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것도 장점이다. 에코호즈의 항카플러스 농장 내에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철도가 놓여져 있다. 이 철도는 향후 보수를 거치면 우리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다.

대규모 영농이 진행되면서 현지화ㆍ과학화도 진행 중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 건너편엔 레닌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이 있다. 이 광장 오른편에 있는 노란색 건물엔 현대자원개발 직원이 정기적으로 오간다. 연해주 정부의 농업국ㆍ투자 유치국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해주 농장 현지에서 근무 중인 최준호 현대자원개발 대리는 러시아어로 농업국 직원과 협의를 한다. 그는 “도로 등 기본 인프라 설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고, 목장 사업을 위한 협의 등을 최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자원개발은 운영하는 연해주 농장 6700ha를 22필지로 나눠 옥수수와 콩을 순환 경작하고, 이에 따라 비료ㆍ농약량을 세세하게 조절한다. 현대자원개발에 따르면 현지 기후ㆍ토양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 정교한 영농을 위해 내비게이션이 달린 트랙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러시아 연해주=이상화 기자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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