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남북대화 중단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북조절위 서울측 위원장의 교체를 요구한 북한당국의 소위 8·28성명은 사실상 남북회담의 중단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섭상의 관례에서 상대측 대표단의 1원에 대한 일방적 기피는 회담을 중단하겠다는 전제가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대표단의 일방적 기피를 수락하는 굴복을 대등한 교섭의 상대가 받아들이는 예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당국이 대표단의 책임자 기피를 공개적으로 성명하고 교체가 없는 한 회담을 않겠다고 한 것은 회담을 일단은 중단한다는 통고이다.
북한당국은 이후락 조절위원장의 기피이유로 이 위원장은 간첩 등 공산주의자 체포기관인 중앙정보부의장이며 이 기관이 김대중 사건과도 관련돼 있다는 등의 주장을 했고 박 대통령의 6·23 선언이 7·4공동성명을 위반한 「두개의 한국」획책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북한이 내건 것은 그들 나름의 한갓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위원장의 직책은 1년이 지난 이제 와서 문제삼을 성질의 것이 못된다.
김대중씨 사건을 끌어온 것은 이 사건에 대한 해외의 여론에 편승, 정부기관을 약화시키려는 그들 본래의 목적을 추구한 것이다.
이런 풀이는 지금까지의 경과에서 충분히 반증된다.
북한당국은 애초부터 남북대화에 적극적이었다기보다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와 국제정세의 압력에 의해 피동적으로 회담에 임해 왔다.
회담을 해오면서도 그들은 부단히 간첩남파 등 종래부터의 대남공작을 계속해 왔다. ▲72년7월 통일의 전제조건은 남한혁명이라는 그들의 방송 ▲72년10월24일 인도적 적십자회담에서 우리의 반공법 폐기 등 이른바 사회적 환경조건 개선 요구 ▲73년6월 민족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위해선 현 남북조절위는 무용하다는 북한당국 성명 ▲73년7월24일 소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대남 호소문을 채택 발표하는 등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그들은 김대중씨 사건을 한 이유로 제시했지만 김대중씨 사건이 있기 전인 7월부터 조절위 월례 간사회의를 「보이코트」해 왔다. 이런 것에 비춰 적화통일 이란 목표를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그들은 남북회담을 깰 구실을 찾고 있었으며 김대중씨 사건을 그 계기로 이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씨 사건이 몰고 온 우리 정부기관에 대한 일부 해외여론의 불신이 적화통일이란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정부기능을 약화하고 우리 사회 안에 혼란을 조성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라는 그들 나름의 판단 아래 회담중단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점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5천만 민족의 염원에 일시나마 찬물을 끼얹는 책임은 북한당국이 져야할 것이다.
또 하나의 북한당국 8·28성명의 배경에는 국제적 고립에서 온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유엔」동시가입 용의를 표명한 박대통령의 6·23 외교선언에 대해 그들은 연방제란 허구한 주장을 내세워 반대했다.
그러나 국제적 흐름은 우리의 6·23선언 지지쪽으로 기울어 2주 앞으로 다가선 올 가을 「유엔」 총회대책에서 북한은 「딜레머」에 빠져 있다.
6·23선언에서 밝힌 우리의 개방외교에 대해서도 그들은 대응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번 「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우리 선수단이 참가하게 되자 남북 체육인의 초보적 회동마저 기피하는데 대한 비난도 아랑곳 않고 대회를 「보이코트」한 것도 그 한 예다.
더우기 조절위의 이른바 평양측 위원장이면서 단 한차례도 회담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박성철로 대리케 해 온 김영주가 상대 위원장의 일방적 기피선언에서 위원장 역을 맡고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무성의와 함께 그들 안의 속셈과 사정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떻든 남북회담은 일단 중단상태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중단이 아주 장기화한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릴 시기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북한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는 어렵고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동·서독의 해빙은 66년부터 72년까지 6년이 걸렸다.
55년에 열렸던 미국과 중공간의 「바르샤바」 회담도 57년 중단됐지만 끝내는 대화를 트게 됐다.
한반도에 있어서의 남북대화는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민족의 명제라는 내적인 필요요건 외에도 해빙으로 가고 있는 국제정세의 압력이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후락 위원장은 회담의 전도에 대해 결코 비관만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논리는 사실상의 회담 중단으로 내세워진 것들이 하나의 구실일 뿐이고 그 점에서 적화통일이란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로 회담의 일단 중단을 택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리에 취해진 조절위원장의 기피성명, 그리고 7·4공동성명의 기조를 헝클어 놓은 그들의 어구로 인해 갑작스레 경화된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 일은 어려운 문제를 많이 떠안게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영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