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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악의 세상 들추다 … 폭력의 20세기 꾸짖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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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칠레 태생의 소설가 로베르토 볼랴노(1953~2003)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가 암투병하며 5년 간 집필에 매달린 『2666』은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비평가·철학교수·신문기자 등을 주인공으로 쓴 5부작이다. [사진 열린책들]

2666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1~5권 136쪽~548쪽
1만800원~1만6800원

우리는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현대문학의 고전들을 알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로베르토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카프카가 남긴 세 편의 장편소설과 그 밖의 빛나는 이름들. 모두 위대한 소설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했고, 목록은 영영 갱신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유작 『2666』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이미 죽었고, 그 사실을 새삼 언급해야 하는 마음이 좋지는 않다. 죽음 자체가 주는 무게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존재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낯설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 아홉 종의 소설이 번역된(그렇지만 여전히 낯선) 작가가 새삼 주목을 받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죽거나 혹은 노벨문학상을 타거나. 요즘은 그마저도 신통치 않다고들 하지만, 11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작가에게는 애당초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그의 부고를 실시간으로 접한 해외의 사정은 달랐다.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돌아온 칠레에서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휘말려 짧은 수감생활을 한 뒤, 문학과는 거리를 둔 채 유럽 곳곳을 떠돌며 부랑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그다. 그러다 치명적인 간질환 진단을 받은 후에야 집에 틀어박혀 목숨을 건 작품을 써내려간 작가의 파란만장한 이력에 비극적인 죽음이 더해졌고, 그는 순식간에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전설이 되었다. 사후에 출간된 『2666』이 온갖 상을 휩쓸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고 그의 성취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볼라뇨는 마땅한 찬사를 받았고, 이는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살아 이 모든 소동을 지켜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사라진 소설가의 흔적을 쫓는 비평가들의 한가하고 공허한 ‘문학놀음’을 비웃는 『2666』 1부의 내용을 생각하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어쩌면 자신을 가리켜 ‘제2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운운하는 비평가들의 뺨을 때렸을지도 모르지. 마치 결투를 신청하는 것처럼.

 사실 『2666』이야말로 일종의 도전장이다. 총 5부, 국역본을 기준으로 1712쪽에 달하는 도전장을 통해 볼라뇨가 결투를 신청하는 건 비단 마르케스와 같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선배들만은 아니다. 다른 대륙의 작가들도, 독자도, 현대문학도 아니다. 그가 도전하는 것은 세계 그 자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惡)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세계를 총체적으로 규명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한 세기 전의 작가들이 수없이 시도한 낡은 기획이다. 하지만 볼라뇨는 그것을 새롭게 해낸다.

 분위기도 형식도 다른 각각의 부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두 개의 중심축으로 연결된다. 아르킴볼디라는 수수께끼 같은 작가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도시인 산타테레사에서 일어나는 여성 살해를 중심으로, 볼라뇨는 비평가들의 모험과 철학교수의 불안과 기자의 권태와 100구가 넘는 훼손된 시체와 사라진 작가의 일대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독자를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보들레르를 인용한 『2666』의 제사)로 인도한다.

 이 자리에서 각 부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마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해야겠다. 『2666』을 읽는 것은 작은 강줄기가 모여 하나의 강이 되고 거대한 폭포가 되어 대양으로 흘러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압도적인 경험이라고.

 19세기 말에 일어난 범죄 행위가 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를 거쳐 20세기 말의 멕시코 산타테레사에서 자행되는 여성 살해로 반복되는 모습은 분명 절망적이지만, 그것을 서술하는 볼라뇨의 태도에는 설명하기 힘든 유쾌함이 있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의 말처럼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죽음의 계곡 속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가 떠오르는” 것이다. 볼라뇨는 그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금정연 서평가

●금정연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책에 관한 글을 쓴다. 서평집 『서서비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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