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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스캔들 그 후 7년…잊히지 않는 이름, 신정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신정아와 강용석. [사진 여성중앙]

최근 종편 채널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정아를 MC로 내세우려다 거센 반대 여론에 부닥쳐 결국 취소했다. ‘신정아 사건’이 떠들썩했던 게 벌써 7년 전인데 여전히 대중에겐 그 기억이 강렬했나 보다.

“내 이름을 왜 그렇게 안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은 2007년 초였으니 벌써 7년이 다 됐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이름은 아직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사건으로 그녀는 1년 6개월간 교도소 생활을 했다.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당시 신정아에게 적용된 죄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력 위조다.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예일대 박사 학력을 위조해 제출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브로커에게 속아 가짜 학위를 진짜 학위로 믿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다른 하나는 미술관 공금을 횡령했다는 부분과 변양균씨(당시 청와대 정책실장)를 통해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 방송으로 복귀하려다 무산됐죠. 기사나 인터넷 댓글들을 읽어봤나요
“일일이 찾아보진 않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접하게 되더군요. 생각이 많아졌어요. ‘내가 비록 큰 잘못은 했지만, 어쩜 이렇게 팔자가 기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죠.”

-무슨 생각이 가장 많이 들던가요
“‘어떻게 내 이름을 그렇게들 안 잊어버릴까’ 싶었어요.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대중은 금방 잊어 버려, 다른 사람이 늘 네 생각만 할 것 같지? 아냐, 다 잊을 거야’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도, 그럴 겨를도 없다”

신정아는 1972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둘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학부모가 됐을 나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녀는 여전히 싱글이다.

- 이제는 일상생활로 돌아와야죠. 사람들 만나고 또 결혼도 하고 그래야 되잖아요
“결혼에 대해서라면 저는 1%의 가능성도 안 남겨두고 있어요. 누구를 만나서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나요
“없습니다. 연애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요.”

-출소한 게 2009년 봄이잖아요, 4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계속 연애 안 하고 지냈나요
“(한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진심으로 그렇게 물어보시는 건가요?”

-네, 그럼요
“제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 난리가 난 거잖아요. 그래 놓고 지금 와서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또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 같은 경우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사랑이라는 건 살다 보면 1년에 2~3번씩 할 때도 있죠
“아니요. 저는 그런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남자가 나타나도 일부러 밀어낼 건가요
“이제 그쪽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사실 그랬던 사람도 있는데 제가 농담처럼 그랬어요. 당신 취향도 참 독특하다고. 변태 아니냐고(웃음).”

‘그 사건’ 당시 대중의 관심은 법률적인 판단보다 변양균과의 스캔들에 쏠렸다. ‘부적절한 만남’이었지만 신정아는 사랑했던 기억으로 남겨두고 있다. 고위 공직자와의 만남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도 신정아의 손을 들어줬다. (권력형 비리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어떤 부분을 가장 후회합니까
“저는 사고방식이 고루하고 답답한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제 성향과는 극과 극인 일을 겪은 거죠.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남의 시선보다는 스스로 나를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지혜롭지 못했던 내가 용서가 잘 안 돼요.”

-불륜을 저지른 부분이 그렇다는 건가요
“저한테는 사랑밖에 안 보였지만, 결국 불륜이었죠. 하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면 상대가 누군지 안 보이잖아요. 언론에서는 고위 공직자라고 말했지만,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높은 위치도 아니었어요. 저는 공무원 세계도 잘 몰라요. 고위 공무원을 꼬드겨서 뭔가 얻어낸 것처럼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저한테는 큰 상처였어요. 어쨌든 시작이 잘못됐으니 모두 제 탓이죠.”

“외할머니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신정아는 2011년 3월 자신이 수감됐던 영등포교도소(현 서울남부교도소)의 수인 번호(4001)를 제목으로 에세이를 냈다. 책 내용 중에서는 외할머니에 관한 부분에도 눈길이 갔다. 그 책에서 신정아가 밝힌 바에 의하면, 외할아버지는 재야 운동가고 외할머니는 당시 신여성으로 불리던 흔치 않은 여성 지식인이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신정아를 소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유력 정치인의 아내를 거론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름이 거론된 그 인사의 자서전을 보면 유명 재야 운동가와의 로맨스 얘기가 실려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내렸다. 외할머니 얘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관련된 질문에 거듭 침묵했다.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고향 경북 청송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올라왔어요. 방배동에서 동덕여중을 다녔고 동부이촌동에 있는 중경고등학교 나왔어요.”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1946년생이세요. 아버지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외할머니가 누구냐가 이슈였어요. 혹시 그 얘기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나요.
“저한테는 그냥 할머니예요. 내가 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밝히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러기가 조금 곤란하네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과거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진위 여부’를 따지고 그럴 테니까.”

-외할아버지를 만난 적은 있나요
“네, 돌아가시기 전에 몇 번 뵈었어요.”

-풍문으로는 1999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침묵)”

-소문으로 도는 분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그렇게 나와요.
“…(침묵)”

-떠도는 얘기들이 있었고, 다들 궁금해 했는데 외할머니로 거론되는 분이 책을 쓰신 적 있잖아요. 책 내용이 소문이랑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요.
“…(역시 침묵)”

-그러면 여기까지만 묻고 안 물을게요. 외할머니가 지금도 경제적으로 도와주시나요.
“그건 노코멘트할게요.”

그녀가 징역살이 중 가장 그리웠던 것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자유’였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굉장히 규칙적으로 지내는 편이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도 직접 차려 먹어요. 저녁에 혼자 있을 때는 그림 그리거나 책 보고 여러 가지 일을 찾아서 하죠.”

-직장도 안 다니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겨우겨우 하고 있어요.”

-책은 잘 팔렸습니까.
“많이 나간 걸로 알고 있어요. 15만부 정도요. 저도 책을 내봤지만, 출판사에서 돈 많이 안 주더라고요. 인세를 꽤 받았다는 소문도 났는데 그건 소문만 그래요(웃음). 그냥 소박하게 살고 있어요.”

세상엔 사건 사고가 참 많이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일은 한 달도 채 안 돼 잊히곤 한다. 그렇지만 신정아라는 이름 석 자는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기획 이한 기자, 글 강용석 변호사, 사진 문덕관(studio lamp)

온라인 중앙일보·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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