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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과 도덕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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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의 주체성」이 흔히 논의되고 있다. 제28회 광복절을 보낸 이 시점에서 우리는 「주체성」이란 의미를 다시 한번 반성해야겠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귀니드」대학 교수인 김선운 박사(철학·목사)가 귀국 길에 느낀바있어 본지에 『주체성과 도덕문제』라는 1백장 가량의 글을 기고했다.
그의 주지를 살리기 위해 전문을 옮겨야 할 것이나 지면 관계로 필자의 야해를 얻어 다음에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체성이란 말은 영어로 「아이덴티트」(identity)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정체」 또는 「신원」이라 할 수 있는데 정체라 함은 본성을 말하는 것이고 신원이라면 유래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주체성은 인격의 바탕이다.
주체성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내가 남이 아니라는 그것」이다. 내가 나됨의 훨씬 본격적이요, 유래적인 것을 말한다.

<개인과 민족의 「그 다움」>
주체성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것 때문에 내가 나인 것이요, 그 민족이 그 민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은 개인과 그 민족의 본질 중 본질이며 그 개체로서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사람에겐 자체성이 있으므로 동물들엔 없는 문제들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특이점이며 특권이다.
개인이나 민족이 주체성이 없다면 그 존재이유와 특권은 상실되고 만다. 동시에 그 개인이나 민족의 그 다음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이 주체성은 도덕문제와 관계가 있다. 사회인류학에서 도덕문제는 인류의 시초부터 있게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체성과 관련된 도덕문제를 다룸에 있어 「나」라는 인격의 주인공이 나 아닌 외적환경과 대결함에서 있게되는 문제점을 살피게된다.

<한국생활과 무관한 유행>
작고 약한 것이 크고 강한 것과 대결할 때 주어지는 문제가운데 특히 「유행」에 관해서 말하고자한다. 유행이 가져오는 사회의 도덕적 문제는 심대하다. 특히 의복의 분야에서 유행은 큰 도덕문제를 형성한다.
옷을 선택하는데 있어 그 종류와 색깔은 개인의 취미이며 자유이다. 그러나 그에서 파생되는 도덕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에 오는 여성들을 봤을 때 놀라게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의복의 유행이다. 의복은 원래 민족과 풍토에 따라 다양한 것이다.
사람에겐 원래 몸을 가리는 의복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현대의 유행적 심리는 이에 반해 가리던 부분의 몸을 가리지 않겠다고 하는 급 전환을 보인다. 「미니·스커트」가 바로 그 한 예이다.
이런 의복이 한국생활의 구조와 무슨 유익을 가져오는 것일까? 경제적으로 천이 절약되는 것이 유익일지. 그러나 「미니·스커트」는 대부분 부유층에서 시작된 것 같으니 그와는 무관한 것 같다.
짧은치마를 입고 장판 방에 앉았을 대의 경우에서 난처한 모습을 흔히 본다.
상인들이 만들어내는 유행에 비판 없이, 아무 평가기준 없이 대중홍수에 밀려가는 것은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인격적 인간으로는 문제인 것이다.
「댄스」에도 문제가 있다. 명절 때면 미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모여서 한 밤을 술과「댄스」로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되고있다. 「댄스」가 좋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장소를 빌어 갖는데 대해 말하고 싶지도 않다. 놀라운 것은 어쩌면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인들이 모두 「댄스」를 배웠다는 점이다.
「댄스」를 못하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버릴 무책임한 문제를 내포한 유행이다. 미국에 오는 한국인이 모두 「댄스」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한국사회에 「댄스」가 보편화한 것이 현황인가?
미국에선 생활이 분주하고 특수한 사람을 제의하면 한가하게 「댄스」를 배울 여유가 없는데 이는 분명 한국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시대가 이 같이 변한 것인가?
모든 변천이 다 좋은 것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무턱대고 선진국 모방>
선진국에서 하는 것이라고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인가? 선진국이 선진국인 것은 「댄스」이외의 발전 때문이다. 무턱대고 그들을 따르는 것은 주체성 없는 행위라 하겠다.
미국 청소년문제 가운데 중요한 것에 이성문제가 있다. 그들은 이를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조」(chastity)라는 낱말의 뜻을 아는 미국 대학생은 거의 없다. 이것은 정조를 가르치지 않고 그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조관념이 전혀 없는 청춘들이 그런 사회에서 자유로 놀고있다.
「댄스」는 그런 환경사회의 소산이며, 또 허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성을 단순한 고집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주체성 즉 순수한 「나」는 고집과 감정 그리고 이기적 태도와 아첨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상황윤리의 제창자인 「조지프·플레처」는 그의 『도덕적 책임』이란 저서에서 『무엇이든지 유익 되는 것은 옳고 무엇이든지 손해 되는 것은 그릇되다』고 했다. 이 같은 도덕기준은 현대의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찬성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떤 것이 유익하고 어떤 것이 해로운 것이라고 규정해야 할까,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고진감래」니 「쓴 약이 병에 좋다」고 하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플레처」의 견해다.

<소망스러운 「나」의 형성>
도덕은 양심에 기초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양심은 갖가지로 다르고 정도상의 차이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윤리의 근본적 표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은 오직 참 진리를 전제하는데서만 가능하다. 주관적 판단을 초월한 객관적 진리, 즉 절대진리를 전제해서 나온 판단만이 참과 거짓을 구별한다. 이 참이 도덕의 근본실체다.
주체성은 자주적 진리에 근거했을 뿐만 아니라 「나」안에 있는 그 진리의 요소다.
그러므로 주체성을 가진 사람은 그릇된 것을 언제나 버릴 수 있고 거짓을 취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주적 진리와 참의 명령에 살고 거기서 행복을 구하는 자들이다.
우리민족의 개개인이 이 같은 뜻에서 주체성 있는 인격으로 개화하게 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더욱 자랑스럽고 소망스런 「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 도덕적 문제들은 올바른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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