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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청년' LA 임낙주씨가 사는 법

미주중앙

입력

임낙주(왼쪽)씨가 최근 LA한인타운 웨스턴과 7가에 있는 랠프스 마켓에서 점포 매니저 애나 홍씨와 포즈를 취했다. 홍씨는 그를 "매우 훌륭한 직원"이라고 칭찬했다.

임낙주(76·LA)씨에게 은퇴는 없다. 앞으로 20년은 더 일할 자신감도 있다.

임씨는 현재 LA코리아타운에서 크레딧카드 멤버 모집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한인 마켓에 물건을 대는 도매상에서 매니저를 했었다. 거기서 은퇴를 했고 지금은 랠프스 마켓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크레딧카드를 가입을 권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여 년을 그로서리와 함께 했기에 미국 마켓 취업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영어 실력도 투박한 생활영어 수준이었다.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단순히 같은 업종이란 이유로 LA한인타운 버몬트와 3가에 있는 본스 마켓에 무작정 지원했다. 그게 6년 전이다.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제 나이나 영어 구사력보다는 한국어를 한다는 것에 더 관심이 있더군요. 점포가 한인타운 한복판에 있는데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한국어 구사하는 첫 직원이 됐습니다.”

거기서 3년을 일했고 3년 전에 랠프스로 옮겼다. 그의 실적이 뛰어나서 다른 직원들은 중간에 그만 뒀지만 임씨만 전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애로요? 비록 마켓에 오는 고객들이지만 귀찮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인상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믿음이 가선지 성과가 좋아요. 소셜번호를 물어봐야 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좀 못 미더워하죠. 가끔 전에 신청한 카드가 나와서 잘 쓰고 있다는 인사도 받습니다. 제손을 거쳐간 카드 발급자가 벌써 1000명이 훨씬 넘고요. 한인은 30%쯤 됩니다. 랠프스 마켓에서는 아무도 저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모두 나보다 젊고 영어도 잘 하는데….”

물론 10명에게 권유해봐야 한 건 정도 신청서를 받는다. 서서 있어야 하고 매장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면서 말을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하지만 즐겁게 일한다.

마흔이 되던 77년에 아내와 함께 삼촌이 있는 네브래스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제약회사 한국화이자에서 영업을 했다. 군수산업이 발달한 네브래스카여서 비행기 부품공장, 기차 제작 공장에 다니다 오일쇼크로 해고되는 바람에 LA로 올 수밖에 없었다.

영업 경험과 성실성 하나로 한인이 운영하는 그로서리 도매상에 직장을 구했다. 열심히 일했고 매니저가 됐다. 그런데 50이 된 어느날 3년 6개월동안 다니던 도매상을 과감히 그만뒀다. 모두 잘 해줬지만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도매상에 세일즈맨으로 취직했다. 업적만큼 바로 보수로 이어지는 커미션 베이스 영업직을 택했다.

55세에 그는 또 다른 결정을 내린다. 미국에서의 일상적인 삶에 젖어 있던 그에게 가슴 저 밑에 숨어있던 아메리칸 드림이 꿈틀거렸다. 10여년간 몸담아 왔던 업계의 노하우를 알고 있었기에 자기 사업에 뛰어 들기로 한 것이다. 고급 그로서리를 주로 취급하는 마켓을 인수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운영했다.

미국에 온지 30년, 일흔 나이가 되면서 마켓 문을 닫았다. 소셜 시큐리티 연금도 나오기에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임씨는 미국 대형 마켓에 파트타임 직원으로 또다른 도전을 한 것이다.

그는 요즘 주당 20시간 일한다. 원래 본스 마켓에서는 40시간 가까이 일했지만 랠프스 마켓에서는 커미션을 받기에 일을 좀 줄였다.

조심스럽게 연수입을 물었다. 커미션을 포함한 연봉이 3만달러다. 소셜 시큐리티 연금을 보태 널찍한 2베드룸 아파트에 산다. 임씨가 정부 보조를 받지 않고 떳떳하게 산다는 자긍심 이외에도 긍정적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건강이 좋다. 대개 은퇴와 더불어 노인병에 들어서는 일이 허다한데 그에게는 다른 나라 일이다.

“식품 가게를 문 닫고 쉬기 시작한 후 잠깐 좋았습니다. 그냥 하릴없이 쉬니까 밥맛도 없어지고 여기저기가 이상하게 아팠습니다.”

지금은 밥맛이 좋다. 아픈 곳도 없다. 그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중 상당수는 그의 도전과 성과에 부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는 별다른 운동도 않는다. 남들은 노동으로 알고 있는 일을 그는 운동으로 하고 있기에, 그것도 행복하게 하고 있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맨손체조하는 것이 건강유지 비결이란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 딱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기자 양반이 물어보니 생각해봤죠. 한 백살까지 할까? 미국회사에서는 내가 능력만 되면 퇴직 연령은 없어요.”

같은 연배의 친구들이 직장이 없다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해주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한인타운서부터 다운타운까지 걸어가면서 물어보면 어딘가는 써주는 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꼭 젊은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이 필요한 데가 왜 없겠어요. 미국회사는 연령 제한이 없잖아요.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도전 정신이 문제겠지요."

일 외에 생활을 물었다. “제가 철학과(고려대)를 나왔죠. 소설도 좋아해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너무 바빠서 못했던 독서를 즐기고 삽니다.”

평생을 통해 기다려왔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그게 다 건강하게 일하니까 가능하다고 믿는다.

임낙주씨의 2014년 목표는 무엇일까.

“제가 한인타운에서는 상당히 성과를 거뒀습니다. 어차피 마켓 안에서 일하는 것이니 이제 근무 지역을 넓혀서 다른 지점에서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저희 마켓 크레딧카드를 손에 넣는 것을 돕고 싶어요.”

글·사진=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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