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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십전대회」서 발표될 「임표 미스터리」의 진상|윌프레드·버체트 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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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1년 9월의 임표 증발사건은 거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진상이 오리무중. 그런데 최근 약 2개월에 걸쳐 중공 등지를 돌아보고 온 「오스트레일리아」태생의 공산권 문제 전문가 「윌프레드·버체트」기자가 상당히 구체적인 「진상」을 밝혔다. 이 글은 「버체트」가 『십전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장담한 삼국지「스타일」의 「임표 종생기」를 간추린 것이다.

<제1막 사상누각의 주인>
임표가 『모택동의 가장 가까운 전우』이며 『변함없는 지지자』라는 말은 처음부터 임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모가 본 임은 단지 유능한 야전군 지휘관이었을 뿐 당의 노선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지도자 감은 못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모가 명실공히 당권을 쥐게된 35년의 준의회의 때 주은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모를 옹호했지만 임은 오히려 모의 항일 유격전 이론에 반기를 들었었다. 또 모가 36년에 집필한 「성성지화·가이료원」이란 논문도 실인 즉 임표를 나무라기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
따라서 49년 중공정부수립후 임은 10원수의 하나로 뽑히고 무공 역시 남 못지 않게 혁혁했으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았었다.
그러나 문혁이 시작되면서 임은 눈부신 활약을 했다. 군대를 동원하여 파멸상태에 직면했던 조반파를 구출하고 이어서 힘의 균형을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이미 모는 임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증거는 66년 7월 8일 모가 그의 처 강청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역력히 볼 수 있다. 모는 임의 이름을 분명히 못 박지는 않았으나 임을 「요괴」라고 불렀으며 『7∼8년 안에 제거할 것임』을 명백히 했던 것이다.
이러한 눈치를 챈 임은 우선 모의 분신인 주은래부터 제거하기로 작정, 67년 8월 척본우가 지도하던 「오일육병단」(홍위병부대의 이름)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의 출두를 강청하자 모는 『나와 함께라면 동의하겠다』고 일갈, 결국 임은 주의 제거를 단념했다.
이와 같은 불안 속에서도 임은 자신이 진출시킨 군부세력을 업고 69년 4월 구전대회에서 마침내 후계자의 공개승인을 얻어냈다. 당 헌장에 『임표를 후계자로 한다』고 못박는 사상 초유의 연극을 연출한 것이다.

<제2막 도끼와 면도대결>
당 헌장의 명문규정에도 불구하고 모는 단 한번도 임을 『나의 후계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유소기에게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줄 때와는 너무 달랐으므로 몇몇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는 강청에게 보낸 편지에서 임에 대한 후계자 승인이 『내 평생에 처음으로 내 의사에 반하는 일에 동의했다』고 술회했다.
따라서 모가 그의 독특한 정적 제거전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첫 번째 승리는 70년 8월의 2중전회(제2차 당중앙위전체회의)에서의 진백달 제거였다.
진은 임의 이론고문역이었으므로 그의 제거는 곧 임의 지도이론에 대한 명확한 불신의 표시였다.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당 헌장에 후계자 조항을 삽입하는 임표의 전격전수법과 시간을 질질 끌면서 치명타를 가할 기회를 노리는 모택동의 지구전 수법은 각기 제나름대로 승리를 향해 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모택동이라는 거암 뒤에 다시 주은래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었으므로 임의 초조감은 갈수록 심해졌다.
마침내 임은 춘추전국시대의 권력 탈취수법인 「암살」을 결심한다.
면도칼의 장점이 그대로 단점으로 뒤바뀐 것이다.

<제3막 제갈량과 007>
1971년 9월 12일.
남경 북쪽의 철로 위를 특별열차가 달린다. 모택동의 전용열차이다.
모는 최근 지방시찰이란 명목으로 상해 등지를 쏘다니며 각 지방의 군구사령관들을 임표로부터 떼 놓는 공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은 남경군구 방문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같은 시각 북경 동쪽의 해안휴양도시 북대하-.
임표는 가족과 측근들을 모두 데리고 이곳에서 무엇인가 보고를 기다리고있다.
만약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모택동은 남경북쪽의 철로 위에서 산산조각이 되어 폭사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보고는 전혀 없었다. 모의 열차는 아무 탈없이 여행을 계속한 것이다.
임의 계획이 어긋난 것은 『어떤 여성이 제갈량과 같은 지혜』를 짜냈기 때문이었다.
임표(혹은 임의부하)로부터 모의 전용열차 폭파령을 받은 사람은 중공군의 어떤 병사였다. 그러나 그는 007처럼 잽싸게 행동하는 대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생각다못해 그는 공산당원이자 의사인 그의 부인에게 지혜를 청했다. 그리고 부인은 과연 그의 기대에 보답했다.
일시적으로 눈이 멀게되는 주사를 놓아줌으로써 명령 불복종 죄도 피하고 모두 살리는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
하지만 임표에게는 아직도 제2의 암살대가 남아있었다. 그들은 제1목표지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대기시켰으므로 북대하의 임은 마지막까지 기다려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불발로 끝났다. 남편에게 주사를 놓은 그녀가 곧 바로 북경당에 연락, 모는 제2목표지점 직전에서 자동차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제4막 사집위의 유성>
9월 12일 밤.
주은래의 집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북대하에 있는 임표의 전처의 딸 임두두가 건 것이다.
임두두는 그녀의 아버지가「트라이덴트」여객기 2대를 북대하 공항에 대기시키도록 명령했으며 야간비행을 할지도 모른다고 보고했다.
모의 암살미수사건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주는 이 일을 무심히 들어 넘겼다.
그러나 뒤이어 또 하나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남해의 모택동 저택에 장교 1명이 나타나서 「극비사실」을 직접 보고하겠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는 퍼뜩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그를 엄중히 심문하도록 명령, 마침내 그가 자객임을 알아내었다. 주는 북대하의 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 주범이 임이라는 점은 까맣게 몰랐으므로 그에게 야간비행이 위험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임의 가족은 음악회에 나가 있었으므로 전화를 그쪽으로 돌리자 임의 처 섭군이 나와서 받았다.
주는 무심히 『야간비행이 위험하니 삼가라』고 말했으나 섭군은 도둑이 제발 저린 격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섭군의 말을 들은 임표 역시 눈앞이 캄캄해왔다.
그는 암살이 미수로 그친 대신 자신의 계획은 발각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었던 것이다.
임 일행은 곧 집으로 달려가 측근들을 데리고 공항으로 달렸다.
그러나 모든 일을 깔끔히 정리해두는 성미인 주은래가 공항에 미리 연락, 『오늘밤엔 나와 임의 동시허락이 없이는 절대 비행기를 띄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공항에서는 급유를 거부했다.
임표의 아들 입과가 그 중의 한명을 사살하고 임표가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하면서 한대의 급유를 마치자 이들은 곧 이륙했다.
임표는 이때 너무 다급하여 직원들에게 『주 수상은 나나 주 수상 중 한사람만 허락하면 된다고 얘기했는데 너희들이 잘못 들었음이 틀림없다』고 억지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급한 바람에 기름을 충분히 넣지 못해서였을까, 이들은 목적지인 외몽고의 「우란바투르」까지 가기 전에 사막 위에 처박혔다.
기체 속에서는 이들의 음모를 밝혀주는 일기와 각종문서가 고스란히 나왔으나 모두 소련관헌의 손에 넘어갔다. 소련 측은 이들 자료가운데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모두 빼버릴 수가 있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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