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핵 보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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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의 안보문제연구위원회가 28일 발표한 보고서는 그것이 비록 자민당의 확정된 의견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주목을 요한다. 이 보고서는 ⓛ핵무기의 생산·도입·보유를 부정한 「비핵 삼원칙」을 일본 정부가 견지해 봤지만 전후 일본의 평화 헌법이 핵 보유를 금지한 것은 아니며 ②「유엔」 경찰군이 편성되면 일본은 무기를 사용치 않는 순전한 국제 경찰로 평화 경계 임무만을 수행한다는 조건으로 이에 협조해야 하고 ③주일 미군사력은 계속 유지되어야 하며 ④일본의 방위청을 되도록 빨리 방위성 또는 국방성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봉쇄하기 위해 만들었던 평화 헌법이 일본의 핵 보유를 금지하지 않고 있는가, 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해외 파병을 용납하고 있는 것인가의 여부에 관한 일본 헌법의 해석 논쟁에는 우리로서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상기 보고서는 일본이 핵 국가로 등장, 해외 파병을 해야 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정치적 신호이기 때문에 국제 정치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2차대전후 패전의 심연에서 벗어나 경제대국으로 등장한 일본이 정치 대국이 되고자 하고 또 정치 대국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핵 보유의 군사 대국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국가 발전의 논리로 보아 당연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 대국으로서의 등장은 지난날 일본 군국주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막대한 희생과 고통을 입은 동「아시아」 제국의 안전 보장에 기여하기보다는 또다시 이들 국가를 군사적·정치적으로 제압할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동「아시아」제 민족으로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가지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미·중공 관계 호전의 소치로 미국은 「닉슨·독트린」의 실천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로부터 군사력을 후퇴시키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미국의 군사력이 이 일대에서 전면적으로 철수시킬 가능성이 있음은 누구나 부인 할 수가 없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재화하여, 동「아시아」에 일시 힘의 진공상태가 조성된다고 할 경우, 일본은 이를 대신해서 메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조심스럽게 군사 대국으로서의 전환론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관측된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자체 방위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끝나야 하며 그것이 주변 제국에 위협을 주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기 보고서가 미국의 군사력이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일본이나 극동 안보를 위해 계속 필수 불가결하다고 역설하면서도 미군사력 보호 밑에서 슬슬 핵 국가로 등장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우선은 미국의 힘을 빌어가지고 동 「아시아」를 재지배 할 수 있는 군사 대국으로 성장하겠다는 저의를 교묘하게 숨겨 놓는 것이다.
우리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일본이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건 아니하건 간에 미국의 핵산 밑에 들어가 있는 한 일본은 핵 국가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해외 파병을 운위할 자격이 없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소련이나 중공의 팽창 위협을 제거하기보다는 동「아시아」제국을 불안·동요케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임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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