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주마간산 한달 간의 견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선이 굵은 역사 감각>
시카고·트리뷴이라는 신문은 질·양 공히 미국 중부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 신문이다. 이 신문사의 광장에 한 외벽에는 이 신문 자체로 보아서 역사적인 보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신문 동판이 15개 붙여져 있어 행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시카고·트리뷴지의 -아니 미국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감각이나 평가를 알기 위해 일고해 볼 필요가 있다.
백년의 역사를 가진 이 신문이 창간호를 동판으로 새겨 진열해 놓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백년의 신문 제작사에 있어서 어떤 사건을 역사적인 뉴스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선정을 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시대를 거꾸로 소급해서 설명한다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 투하, 대독 전쟁의 종료, 일군의 펄·하버 기습, 미국의 대독 전쟁 참가,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등등 15개가 선정되어 있다.
2차 대전 후 세계 제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수많은 사건을 일으키고 경험했지만 미국사를 거시적인 면에서 본다면 전후 4반세기 동안에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한 뉴스 보도만이 역사적인 보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자신만만한 자세이다. 거인국의 거대지 아니면 감히 취하기 어려운 태도로 생각했다. 전후 4반세기의 역사에 있어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만을 추려서 보존·전시해 놓았다는 것은 미국인의 역사 감각이 무뎌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선이 굵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정치 도시 워싱턴 DC에는 화이트·하우스를 기점으로 해서 워싱턴·메모리얼 링컨 기념탑, 그리고 알링턴 묘지에 자리 잡고 있는 케네디의 무덤이 일직선으로 보이도록 배치 설계되어 있다. 건국 후 2백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 10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러나 그 중 워싱턴 링컨 케네디 3명만을 추려서 기념탑을 세우고 필이 후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의 업적으로 보아서는 케네디보다 F·D·루스벨트를 추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논이 늘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NEW FRONTIER」의 정신을 가지고 소련과의 냉전에 있어서 주도권을 되찾고 암살을 당해 비극적으로 생애의 막을 내린 케네디를 현대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것이 무엇이 못마땅하냐 하는 반론이 더 강하다고 전한다.

<과거와 현재의 병존>
우리 한인의 감각으로는 고물이나 골동품이라고 하면 적어도 백년 이상 된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미국 사람은 몇 10년 정도 지난 것이라면 Antique로 간주하고 있다. 건국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건국의 시조들이 구대륙에서 절연하고 막막한 미개지에 신사회를 이상적으로 설계하고 수립해 놓았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미국의 역사는 비록 짧다 하지만, 포티믹 강변 조지·워싱턴이 살던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소라도 역사적인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고이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영국 시민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 있어서의 미국은 과거와 현재가 항상 같은 공간 속에, 그리고 시민의 의식 속에 병존하여 왔다. 여기 새롭고도 낡은 나라 -미국의 특색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거와 현재의 연속과 공존이야말로 미국 사람들로 하여금 생동한 역사 의식 속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느끼고 공동 생활을 해 나가면서 미래를 설계케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의 현실적 활용>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가 길다는 것은 조금도 자랑할 것이 못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의 작위와 창조를 담아 나가는 것이 역사요, 그 역사를 일정한 공간 속에다 정착시켜 놓은 것이 바로 현실 사회이다. 그렇다면 한 민족, 한 국가가 진정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결코 긴 역사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얼마나 알찬 내용을 많이 담아 놓았는가, 그리고 가치 있는 내용을 얼마나 잘 정착시키고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역사 조건·자연 조건은 한국의 그것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우리 민족 역시 역사를 창조하여 정리하고 기록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하면서 현실을 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올바른 전통의 확립과 발전은 역사를 창조하면서 정리하고 보존해 나가는 데서만 가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신상초 본사 논설 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