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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손자와 보란 듯 골프 친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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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0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올해 폐장을 알리는 종을 치기 직전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57%나 상승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제적 파장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도쿄 AP=뉴시스]

지난 29일 밤 10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페이스북에 새 글이 올라왔다.

 “20대의 경우 찬성 60%, 반대 15%. 30대 이상은 찬성 59%, 반대 22%. 오늘 자 아사히신문에 나온 여론조사에서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설문에 대한 결과입니다. (중략) 그런데 지면 취급은 놀랍게도 30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민의 찬반 등 중요한 사항이 많은데 눈에 확 띄는 1면에 보도하는 게 좋지 않았을지….”

 아베를 대신해 비서관이 올린 이 글은 아베의 현재 심리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일본 내에선 이렇게 찬성하는데 외국에선 비난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비서관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지면 사진까지 페이스북에 올렸다.

 연말연시 휴가에 들어간 아베는 29일 자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외무성 부대신과 여유롭게 골프를 즐겼다. 기시는 아베의 5살 밑 동생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외가인 기시 가문의 양자로 들어간 인물. 호적상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친손자다. 야스쿠니 참배 이후 ‘A급 전범 숭배’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 그 자손인 기시와 골프에 나선 것이다. 도쿄 인근 쇼난(湘南) 지가사키(茅ヶ崎)의 고급 골프장에서 운동을 즐긴 아베는 밤에도 기시 부대신 등 친족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아베 비서가 올린 아사히의 여론조사가 실시된 시점은 참배 이후가 아닌 11월 6일부터 이달 20일에 걸쳐서다. 따라서 현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참배 직후인 28~29일 교도(共同)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교적 아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선 찬성이 43.2%, 반대가 47.1%로 비판적 여론이 조금 많았지만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55.2%로 “지지하지 않는다”의 32.6%를 크게 앞섰다. 참배 전인 22, 23일 조사 때의 지지율 54.2%보다 오히려 지지율이 1%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각국에서 (야스쿠니 참배에) 반발하는데 외교관계를 배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배려해야 한다”가 69.8%로, “그럴 필요 없다”의 25.3%를 크게 앞질렀다. 즉 일본 국민들은 현 아베 정권에 대해 “야스쿠니 참배는 좀 신중히 해줬으면…, 하지만 경제가 좋으니 아베 정권을 지지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베의 여유와 자신감은 여기서 나온다. 아베는 이를 간파한 듯 30일 오후 3시에는 올해 폐장일에 맞춰 도쿄증권거래소를 찾았다. 직접 폐장을 알리는 종까지 울렸다. 현직 총리가 폐장일 행사에 참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자신의 ‘아베노믹스’로 연중 주가가 57% 뛰었음을 강조하면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국내에 번지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베가 야스쿠니에 간 것은 17년간 끌어오던 오키나와(沖繩)현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의 해결이란 선물을 안기면 미국도 크게 반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참배 하루 전인 지난 25일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현 지사와 만나 연간 3000억 엔을 지원하는 대신 오키나와현이 주일미군의 숙원사업인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邊野古) 이전을 위한 매립 신청 승인에 나서는 것에 합의했다. 오키나와현은 이를 참배 다음 날인 27일 공식 발표했다.

 실제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직후 “실망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했던 미국은 27일에는 척 헤이글 국방장관 명의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의) 결단을 환영한다. 미·일 관계는 한 단계 더 격상될 것”이라는 ‘환영 성명’을 내놨다. 하지만 아베와 미국의 ‘후텐마 공동 보조’는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키나와 지사가 유권자에게 약속했던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을 배신하고 아베 쪽에 붙었다”는 역풍이 오키나와 내에서 강하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기지를 이전하려 하는 헤노코만이 있는 나고(名護)시의 시장 선거가 당장 내년 1월 19일로 예정돼 있는데, 현재로선 이전에 반대하는 현직 시장이 크게 우세한 상황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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