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분식회계 왜 커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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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조5천억원이라는 분식회계 규모를 놓고 SK글로벌의 직원들조차 놀라고 있다.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분식회계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SK글로벌의 분식 회계는 1995년부터 계속됐으며 부문별로는 ▶외화외상매입금 누락 1조1천8백81억원 ▶가공외화외상매출채권 1천4백98억원 ▶부실자산 대손충당금 미계상 4백47억원 ▶재고자산 과소계상 6백70억원 ▶투자유가증권 과대계상 2천5백1억원 등이다. 쉽게 말해 외상수입대금을 이미 준 것처럼 회계처리해 흑자 규모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글로벌이 제조업체와는 달리 물건과 대금이 쉼없이 왔다갔다 하는 무역업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달러어치의 물건을 외상수입한 뒤 유전스(Usance.기한부 어음)로 결제하면 글로벌은 아직 은행에 돈을 주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채무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결산 때 이를 장부에서 빼버리면 부채는 줄어들고 흑자폭이 늘어난다. 그 뒤 이 대금은 다른 물품을 수입.판매한 돈으로 은행에 갚고 나중에 수입한 물품의 유전스는 또 다음으로 미루는 수법이다. 카드 돌려막기와 비슷한 결과를 낳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시작한 분식회계의 규모가 1조원 이상으로 불어난 것은 외환위기와 기업 합병이 결정적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관계자는 "해외투자가 90년대 들어 실패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외신인도 등의 문제로 이를 손실로 회계처리하지 못하면서 분식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를 털어냈어야 했을 시점인 97년 이후에는 외환위기가 오면서 회사수익성이 악화됐고, 2000년에는 주유소 사업을 하는 SK에너지판매를 합병하면서 상호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또 발생해 분식 규모를 더 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단순히 장부상 수치를 조작한 것이며 해외로 돈을 빼돌리거나 직접투자의 실패를 숨기려고 있지도 않은 유령자산을 장부에만 잡아놓는 등의 일반적인 분식회계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특히 94년 SK텔레콤을 인수하면서 외부자금 조달 수요가 늘어난 SK그룹이 주요 계열사인 SK글로벌(당시 ㈜선경)이 적자를 내도록 방치할 수 없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금융권 등에서는 글로벌이 숨겨놓은 해외 자회사의 부채나 지급보증 등이 더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당국도 현재 경제상황에 부담을 느껴 글로벌에 대한 처리에서 '눈에 보이는' 분식 부분만을 문제삼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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