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커크 해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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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일자 일본 경제 신문은 서울의 소식통을 인용, 한국이 올 가을 「유엔 총회에서 언커크 해체를 제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불확실한 이 기사의 출처로 보나 유엔 회원국도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 보나 한국이 스스로 언커크 해체를 제안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실지로 한국은 이미 6·23 선언의 설명 과정에서 김 총리가 기자 질문에 답변하여 『언커크는 유엔 결의에 의해 설치된 기관이므로 그 해체 여부는 언급할 성질이 아니며…언커크는 남북 자유 선거를 감시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나, 현 단계로서는 남북 자유 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커크 존속 여부에 관해서는 유엔의 결의에 따르겠다』고 하여 정부의 공식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언커크의 해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뿐이요, 능동적으로 이를 요청할 생각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언커크는 50년10월7일 한국 동란의 와중에 유엔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설립된 기구로서 한국의 통일 독립 민주 정부를 설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기관이나 그 동안 북한에는 입국할 수 없어서 대한민국 내에서만 활동해 왔었다. 따라서 언커크는 매년 총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여 대한민국의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발전상을 보고해 왔을 뿐이다. 법적으로 언커크는 한국 내에서 「유엔」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그 임무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관하여 관찰하고 대소 선거 때마다 선거의 공정성 여부를 감시하여 국련 총회에 연차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이었다.
언커크 의 유엔 총회에 대한 보고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유리한 조건들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었다. 이 보고서는 작년에도 한국 통일이 불가능한 원인이 ①국제 정세와 한반도의 정세가 아직 한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②북한이 국제 연합 특히 언커크의 역할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라 지적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 밑에서 북한과 그 동조 공산권이 대한민국의 유일 합법성을 인정하고 있는 언커크에 대하여 처음부터 비판적으로 나와 언커크 해체 안을 연례 행사처럼 제안해 왔던 것 다 아는 사실이다. 71년과 72년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의 불상정 방침이 성공하여 언커크 해체 안에 대한 토론은 연기되어 왔다. 그런데 금년에는 한국 문제의 상정과 언커크 해체 안이 공산 측에서 제안될 것이 틀림없게 되었다.
따라서 금년 유엔 총회에서는 ①공산 측이 제안하는 언커크 해체 안이 통과될 공산이 크며 ②언커크 회원 국가들 중에도 몇 나라가 노동당 정권이 되어 이 기구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자동적으로 해체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이런 여건하 한국 정부는 지난 6월23일 외교 정책 선언에서 언커크 해체 불 반대 성명을 냈던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언커크 해체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정부의 정책 빈곤의 결과라고는 탓하지 않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여·야당 지도자들이 언커크의 해체를 공언하고 있는 것은 비실현적인 언커크 해체에 응하면서 다른 국제 안보 기구의 창설이나 유엔군의 존속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커크 해체 안을 제안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유엔」군 해체 안에도 찬성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외교는 원리·원칙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리를 쫓기 위하여 명분을 희생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외교 정책의 전환은 필요하나 그렇다고 필요 이상의 양보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 「유엔」 총회의 「언커크」해체 의결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다는 성명으로 우리의 태도 표시는 족하며, 우리가 능동적으로「언커크」 해체를 제의할 필요성과 명분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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