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대 의대 문과생도 지원, 없던 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대가 현재 고교 2학년부터 문과생의 의대 진학을 허용하기로 한 방침을 발표 한 달여 만에 뒤집었다. 문·이과 구분을 뛰어넘어 융합형 인재를 의대생으로 받겠다는 취지였으나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면 교육현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서울대 박재현 입학본부장은 27일 “수의과대학 수의예과, 의과대학 의예과, 치의학대학원 치의학과에 수능 응시영역에 따른 문·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입시안의 2015학년도 시행을 무기한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의) 급격한 입시변화가 초·중등 교육현장과 수험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대는 24일 입학정책위원회에 이어 이날 입학고사 관리위원회, 학사위원회를 거쳐 시행 유예를 확정했다.

 서울대는 지난달 14일 “인문·사회과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자질을 균형 있게 갖춘 학생을 선발해 융·복합 시대에 부응하는 인재를 육성하겠다”며 문과생의 의대 진학 허용 방침을 발표했었다. 이런 방침이 나오자 일반고들은 “이과반 개설이 금지된 특목고의 의대 진학이 쉬워져 특목고가 특혜를 누릴 수 있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서울대 발표 이후 시작된 서울지역 외고 원서 접수에서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지난 17일 서울대에 공문을 보내 방침 재고를 요구했다. 교육부는 서울대 발표 직후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문·이과 융합형 수능 도입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했었다. 그러다 ‘특목고 특혜론’이 불거지자 “서울대가 내년도 공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선정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서울대의 이번 결정은 내부 진통 속에 나왔다. “교육현장의 의견을 뒤늦게라도 반영했다”는 명분을 얻었지만 서울대의 입시정책은 신뢰성에 상처를 입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관계자는 “이미 발표한 정책인 데다 문·이과 융합이 큰 방향에서 맞는 만큼 방침을 철회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내부에 많았다”고 전했다. 이런 만큼 내년 서울대 차기 총장 선출 이후 이 이슈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박 본부장은 “의대 교차지원 허용 방침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유예’한 것이 맞다”며 “교육 여건과 사회 환경을 고려해 가능한 시점이 되면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현재 초등 5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8년부터 새 교육과정을 도입해 이들이 치르는 2021학년도 수능은 문·이과 통합형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때부터는 대입에서 문·이과 구분 장벽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성시윤·이정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