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확장 「러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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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3이후 가열되기 시작한 기업의 신규투자·증설「붐」은 이제 그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본사가 조사한 31개 주요기업 「그룹」의 사업확장계획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의 재계를 지배하고 있는 「그룹」의 대부분이 올 들어 이미 기존시설능력을 늘렸거나, 새로운 투자대상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구상 또는 이미 착수하고 있는 신규사업의 내용은 간장·빵·구두에서부터 7억불짜리 제철공장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60년대의 맹아기에서 저마다 닦아온 기반을 토대로 이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재계의 전국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러나 50년대의 일본경제를 연상케 하는 민간기업의 이 유례없는 시설투자「러쉬」가 기본적으로는 해외수요를 그 근거로 삼고 있음은 주목되어야한다.
최근 수년간 국제경기가 비록 상승세를 지속하고는 있으나 점차 도를 더해가는 국제적인 「인플레」현상은 조만간 각국으로 하여금 긴축정책의 채택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경기확대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의 경우 특히 두드러져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74년의 미국경기후퇴를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더하여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국제통화체제불안과 범세계적인 식량부족, 팽배하는 경제적 민족주의의 대두 등을 고려할 때 국제경제의 여건이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진전될 것으로는 믿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원조달 면에서도 이들 신규 또는 증설투자의 대부분이 그 재원을 외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 내자의 확실한 뒷받침 없는 무분별한 외자유입이 기업부실·금융부실에까지 귀결되었던 60년대 후반기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차관에서 투자로 비록 그 형태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외국과의 합작이 단순히 싼 노임과 토지의 제공에 그치는 하청공장화를 막기 위한 산업정책적 배려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중화학공업육성과 관련, 제철·정유·조선 등 기간산업에 대한 국내기업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점은 환영할만하나 이들 산업의 기간전략적 성격에 비추어 외자지배에 의한 과점체제형성과 기술독점 등의 폐단을 막기 위해 내외투자선정과정에서 각별한 신중이 요청된다.
또한 이들이 대표적인 공해산업임을 감안, 공해방지산업의 동시육성도 불가결하여 이는 행정부의 책임아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투자의 시장성에 대한 과학적인 검토도 간과될 수 없다. 특히 해외수요에만 의존하는 투자의 경우 국제시장동태의 보다 면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내수개발에도 역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정책당국은 민간기업의 투자「러쉬」를 장기적인 산업정책의 안목에서 조정, 국민경제의 대외의존도심화를 저지할 책임이 있다.
특히 최근 석유·원목 등에서 현저해진 이른바 자원민족주의의 대두경향에 비추어 수입유발적 산업, 원자재의 대외의존이 높은 산업은 가급적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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