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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려시대는 우리 나라 도자기사상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제도의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신라토기를 계승한 고려토기·연화연유토기류 뿐이었다. 그후 인종(1023∼1063) 때에 북송의 월주요, 여요, 정요 및 경덕진요 등의 깃법을 모방한 비취색의 우아하고도 오묘한 청자의 절정시대를 이루다가 호화찬란한 생활을 일삼았던 의종(1147∼1170)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창적으로 상감청자인 새로운 양식을 발명해서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상감청자는 일명 운학청자라고도 하며 신라시대의 도기에 조각한 한국 고유의 인문과 당시 공예품으로서 귀중히 여긴 나전과 같은 방법으로 고안되어 사기에 상감을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훌륭한 작품을 이어받고서도 고려사기는 고사하고 이조백자의 고고학적인 시대분류마저도 우리 손으로 못하고 일본인 고고학자에 의해서 분류되어 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자의 70여가지 색을 나타내는 비취색을 구명하는 것만도 요업공학적·화학적 및 연소공학적 기초지식이 요구된다.
유리안에서 푸른색을 내는 것은 산화철 「이온」 군에다 환원성 분위기를 조성, 굽기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산화제2철이 환원되면 처음에 「마그네타이트」가 되고 다음에 「비스타이트」가 되었다가 철까지 환원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산화제2철에는 침상·구상·입방체상 및 사방육면체상이 각기 반응에 따라 다른 성질을 띠고 있으며 「비스타이트」는 섭씨7백도 이하에서는 매우 불안정해서 산화하기 쉬우므로 이것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규산철을 만들어 유약에 쓰는 것이 좋다. 이러한 것이 비취색을 좌우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70여가지 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청자를 감상하는데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요업공학적으로 유약이나 소지에 결점이 없어야 좋은 제품이 되는데 미술가들은 오히려 그 결점을 미화시키는 수가 많다. 특히 유약에 금이 간 것은 결점 중의 큰 결점인데 일반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또 유약 중에는 무수한 기포를 내포하고 있으나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이점을 도외시한다. [임응극<서울대공대교수·공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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